-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420-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光山金公 諱 容俊 之墓(애국지사 광산김공 휘 용준 지묘)
愛國志士 光山金公 諱 容俊 之墓(애국지사 광산김공 휘 용준 지묘)
광산 김공 휘 용준은 신라 헌강대왕의 제3 왕자이신 시조 김 휘 흥광 공의 36세손 가선대부 중추부 동지사 휘 진현 공의 손 38세 휘 기수 공(배 순흥안씨)의 제 2자로 1874년 갑술 6월 11일에 출생하셨다. 휘 용준 공께서는 경술국치로 일제 식민통치가 날로 더욱 가혹해가자 항일독립의식이 점점 굳어가면서 망국의 울분을 참아오던 중 3.1독립만세운동이 황야의 불길처럼 전국방방곡곡으로 확산되던 즈음
한마을에 사는 안용호 남영진 최성원 남상필 등이 4월 2일 최성원씨댁(봉현면 대촌동)에 모여 항일독립만세운동을 거사하기로 논의 중 4월 9일 풍기장날 풍기싸전(미곡전)에서 거사하기로 뜻을 모아 계획이 구체화됨을 접하고 공은 즉시 찬동하고 항일 만세운동을 준비하는데 온 힘을 쏟아 손수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인근동리에 동지들을 포섭하는데 힘을 다하였다. 1919년 4월 9일 오후 3시 30분경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장에 모인 남녀노소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치며 백여 군중이 태극 물결을 일으키며 전지를 진동시켰다. 당시 풍기에 주재중이던 일본헌병들은 총을 쏘며 몰려나와 안용호 남영진 최성원 세분을 체포하여 주재소로 끌고 갔다. 이 현장을 목격한 용준 공을 비롯한 백여 군중이 울분을 터트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 물결을 일으켜 노도처럼 주재소 앞마당에 몰려가 붙들려간 세사람을 풀어달라고 소리쳤지만 더욱 폭악해진 일본헌병들은 다시 황정흠 김용준 남상필 황정흠 이화백 씨 등을 체포하고 총칼로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일로 말미암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그들의 소위 보안법위반
으로 징역 3개월형에 처하였으나 다시 정상참작이라는 목적으로 태형령 제 1조와 제 4조를 적용하여 태형 90도를 맞으며 옥고를 치루셨다. 옥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 노환이 겹쳐서 1932년 임신 6월 10일 대촌리 주성골에서 돌아가셨다. 대한민국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4년 4월 5일 려산후인 송종섭 근찬
2004년 4월 5일 려산후인 송종섭 근찬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420-8 하나조경 부근 애국지사 김용준 선생 묘소를 찾아왔다.
이곳의 GPS 상의 주소는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420-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