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억 집 터

4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639
탐방로그
공훈록에서 검색되는 선생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양 石保 畓谷 639이다. 그러나 해당 장소를 찾아와도 안내판이 비석 등이 세워지지 않아 구체적인 장소는 특정할 수 없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박주억 선생의 집 주소 부근에 무안박씨 관련 비석이 서 있었다.
務安朴氏 惇敍稧事蹟碑(무안박씨 돈서계 사적비)
務安朴氏 惇敍稧事蹟碑(무안박씨 돈서계 사적비)
일월영봉 산줄기가 남쪽으로 굽이쳐 달리다가 이곳 시루봉에 그 정기를 모아 수려하고 유수한 동학을 이루어 자리한 답곡동은 옛부터 고지로 이름이 있는 고장이다. 이 마을에 우리 무안박씨 영해파 일족이 우거 정착한지 100여성상 그 동안 박문약례의 유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숭졷곤종하며 상부상조하는 정의를 다지면서 향내벌족으로 살아왔다. 경술국치이후 일제의 침략과 혹정이 극에 달하자 오종은 왜정을 피하여 정든 영해 고향을 더나 이곳 심산유곡을 찾아 답곡 홍계 병옥 시량등지로 이주하였으며 입향종택도 이곳 답곡에 은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왜적의 핍박과 만행을 좌시할 수 만은 없어 경향각지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창일할 무렵 미력이나마 이를 후원하고 배일사상을 고취하며 숭조돈종을 다지기 위하여 갑자년(1924년) 3월3일이
곳 답곡에서 오종 88인이 모임을 갖고 돈서계를 조직하였으나 3월 3일은 기미독립선언문에 나열된 독립투사 33인을 뜻함이요 88인은 사방팔방으로 독립운동이 확산됨을 뜻함이었다. 이에 궐기한 우리 종인들은 각자의 소중한 기금을 갹출 대지300여펴을 구입하여 세세화수동락 하고 시부창수 등으로 친목과 단합의 의를 다져 왔으나 광복이후 후손들이 사방각처에 유나산거하게 됨에 따라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이에 창립 돈서계원의 후예들이 선인 여러분께서 이룩하신 유업을 영원토록 기리기 위하여 전후손의 창견을 모아 대지를 방매하고 추가로 후손들이 성금을 모아 여기 청학과 백운이 굽어보는 자리에 사적비를 세운다.
박주억 애국지사의 거주지라고 되어있는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를 찾았다.
박주억 선생의 집의 주소는 석보면 답곡리 639인데, 여러 집에 걸쳐있는 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