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 3.18만세운동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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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470-12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었으며, 이현우, 이현설, 권재형 등의 애국지사는 창수에서 일제의 경찰관주재소를 모조리 부수는 만세의거를 일으켰다.
일제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포항 헌병대, 대구 주둔 일본군 80연대의 기마병 등을 동원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8명의 사망자와 16명의 부상자를 내었으니, 영해인들은 뜨거운 눈물을 삼킨 채 내일을 기약하며 만세의거를 멈추었다.
수천명의 영해인들이 일제의 간악한 손아래 잡혀, 객사와 마방사에 갇힌 채 굶주림과 고문으로 무수한 고난을 겪었으며, 180여 명의 애국지사들은 많게는 7년, 작게는 태형에 이르기까지 큰 고통을 겪었다.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470-12 로타리 영해 3.18만세운동 기념탑을 찾아왔다.
영해 3.18 독립만세 운동 기념탑
취지문
나라 잃은 자 누군들 분연히 일어서지 않으랴 마는 왜적의 저 무서운 총칼 앞에서도 죽음을 무릅쓴 영해인들의
기상이야말로 참으로 민족의 갈 길과 나라 잃은 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웅변으로 보여 준 것이다.
1919년 3월 18일 영해인들은 왜적에 짓밟힌 이 강토의 소생을 위해 '독립만세' 함성소리를 우레처럼 지르며
예주벌과 칠보산, 읍령, 고래산을 휘돌아 영해고을 전체에 뒤덮게 하였다. 투지는 하늘을 찌르고 기개는 동해의
파도 소리를 능가하여 천지를 진동시키고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매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의사들의 뜨거운 조국애는 후손들의 천추만대의 자존심일지니 이제 여기 이자리에 영해인들의 의기로움을
영원히 되살리고자 애향동지회에서 그 뜻을 이 하나에 모았다.
서기 2003년 12월 30일
애향동지회 회장 박진현 외 회원일동
돌아와서 비문을 입력하다보니, 한면을 촬영하지 않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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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타오르는 의기를 보여주고 3월 18일 영해장날을 기다렸다.
지게 속과 오쟁이 속, 각자의 품속에 태극기를 품고 와서 오후 1시경 일제 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을 위한 만세를 높이 외치니, 수많은 장꾼들이 함께하여 2천명이란 대군중이 애국투사가 되었다.
독립의 정당한 요구를 총칼로 위협하는 일제순사를 몸으로 막고, 구타하여 항복시켰으며,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부수었다. 만세의거는 병곡까지 이어져 병곡 경찰관주재소와 병곡면사무소를 부수고 다시 밤이 새도록 영해읍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쳤다.
3월 19일도 똑같이 읍내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영해인들의 뜨거운 조국애를 마음껏 드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