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368-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368-1 순국의사 유창우의 묘
공의 휘는 창우 자는 순경이요 풍산 유씨이다. 원조 휘 백은 고려충신열왕시 은사 우제요 팔전이 휘중영은 관찰사 증령의정풍산부군 호 입암이요 그 차자 휘 성용은 영의정풍원부원군시 문충공 세칭 서애선생이요 그 손자 휘 원지는 현감 호졸제요 그 5대손 사춘은 중추부사 증참판이며 그 삼자 휘 철조는 고성군수 호 소헌인데 공의 고조이다. 증조의 휘는 수목 통덕랑이고 조는 휘는 한영 호 성포 사인이고 비는 의성이씨 고산 유장의 호요 계비는 양천허씨이다. 공은 1884년 을유에 하회에서 출생 신유년에 졸하였고 배는 광산김씨 부 대현 담용석의 후이다. 자는 비진 업유이고 여장은 적의성금호태 부징 미병 운천통의 후요 차 적의성 김중모 부 유락 학봉 후이다. 시진이 생4자5녀하니 장남 우하는 6.25사변당시
실종이고 하는 계하 역하인데 각자 생업에 충실하고 차 덕하는 조졸이고 여장증 숙정 순천 김동오 부 강연동 이공 윤안의 후요 차증 조적 김해김정수 부봉은이요 차증남 적해주 오상용 부 돈수 차증자적 김해 김정진 부재덕 안경공 목경후이다. 서손은 계하자 한혁이요 차 역하자 하슬린 차 덕하자 한설이다. 여는 유부진록이다. 오호라 의사의사는 인생의 정도인데 공은 대성가문에 태어나 온유강정한 성품으로 전래의 충효교육을 받아오던중 일제의 강압으로 경술합방이라는 불공재천의 국치를 당하자 망국의 한을 풀고져 약관으로 조국광복운동에 투신하였으나 국내무대는 부자유함으로 제반가사를 이씨인 휘 금우에게 위임하고 일본으로 밀항 노무자로 위장하고 적정탐사를 하던 즈음 3.1운동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정요인 이향과 접촉하여 수집한 정보를 전달하고 요로 이시영선생 솔하에 들어가 군자금모집 경북책임자로 지명되어 각종 반일 간행물과 채권등을 휴대하고 귀국도중 일본 나가사키에서 일경에 피체 경성지방법원으로 이송되어 정치범 처벌령 위반으로 징영3년형을 받아 복역중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21 11월 2일 음력 10월 2일 37세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순국하여 광복후 1977년 3월 1일 대통령표창후 재심결과 1991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앆다. 오호라 공은 이 새상을 의롭게 살았으니 저 세상에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묘소는 하회시개골에 있는데 손자 계하등이 묘비를 세우고저 단하에게 비문을 청함으로 그 정성이 갸륵하여 노혼불문을 무릅쓰고 위와같이 서술하고 새겨 가로되 일생일사는 인지상도인데 공은 의롭게 생을 마쳤도다 빛나는 행적은 가문과 사회에 자랑이로다. 세상이 혼란하고 인심이 불고하니 공같은 애국선열이 그립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