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계홍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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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 1113
탐방로그
안동시 임동면 대곡1리 1113 해천마을 동암사 왼쪽에 있다는 항일의사 권계홍의 묘를 찾았다. 건국훈장도 추서받지 못하고 있을 때, 동암사의 주지스님이 도와서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고 동암사에 계시던 보살님으로부터 들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과수원으로 올라가면 있다
항일투사 해암 안동 권공 계홍 지묘
공의 성은 권 휘는 계홍 자는 계승 호는 해암이니 안동인이며 시조 삼한 벽상 삼중대광아 부공신 권신의 33세손이다. 고조는 휘 덕건 증조는 휘 상정 조는 휘 숭도 고는 휘 창수 비는 연일 정씨 별장흥은의 딸이다. 공은 고종 8년 1871 4월 9일에 안동군 임동면 대곡동에서 출생하여 향리서당에서 한문 수학을 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고 고종 37년 29세때 백촌 김충의공의 후손인 김한운의 딸에게 혼인하였다. 35세때인 광무 9년 11월 17일 일제강압에 의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에 나섰으며 이듬해
1월 집을 떠나 안동 영양 봉화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융희 2년 7월 안동군 내용 담사 부근에서 일제 수비대와 교전 공을 세웠고 융희 3년 6월 의병대장 박처사 등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관이 주재하고 있는 안동 영양군 내 주재소를 습격하였으며 10월 교친 소상때 귀가하였다가 일본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지방재판소로 송치되었는데 이듬해 1월 27일 3년 징역이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출옥 고향으로 환고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는데 몇년동안 외처로 피신하였기 때문에 재수감은 면하였고 가족과 집안살림을 돌보지 않았으므로 출생한 독자 중대는 중환을 앓았으며 가세가 기울어져 심한 생활고의 참상을 겪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광복을 맞이하기 6개월전인 3월 24일 향리 대곡에서 서거하였으니 향년 75세였다. 두품산에 장사하였다. 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고 1993년 6월 1일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증을 받았다. 공은 천품이 온화하고 성격이 원만하여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었으므로 모두가 좋아하고 잘 따랐으며 문중이나 이웃 일에는 남보다 먼저 나서서 처리하였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침착하고 신중히 대처하여 실수가 없었으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곤궁한 생활 중에도 함께 항일투쟁을 하다가 순국한 박처사의 가족들을 지
성으로 돌보아 주었고 나라의 위급함을 당해서는 몸과 마음을 온통 바쳤던 것이다. 1남1녀를 두었는데 남은 중대이고 여는 진성 이용걸에게 출가하였고 손자는 오매 오윤이고 외손자는 이희섭이고 증손은 기철 기룡 기성이다. 공의 외손자인 이희섭 형이 공적사항과 재판기록을 가지고 와서 비문을 지어달라 하기에 위와 같이 기록한다.

1993년 월 일 경북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김시황 근찬 진성 이동호 근서
안동시 임동면 대곡1리 1113 해천마을 동암사 왼쪽에 있다는 항일의사 권계홍의 묘를 찾았다.
동암사 앞 주차장까지 왔다.

동암사 왼쪽 권계홍 선생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