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록 유허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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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881
탐방로그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881에 위치한 이원록 유허지비를 찾았다. 이육사문학관에서 300m 정도 거리에 있는 생가 터에 안동댐 수몰로 이 곳에 있는 생가는 안동시내로 옮겨가고, 그것을 알리는 청포도 시비와 육우당 유허지비가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비록 육신은 스스로 불살랐건만 그 일과 뜻은 저 강산과 더불어 천추에 푸르는 지사 시인이 있으니 그분이 육사 이원록(일명 활)선생이다. 선생은 1894년 4월 4일 이곳 원촌리에서 퇴계선생의 14대손으로 출생하여 소년시절 조부 가헌공에게 한학을 배우고 예안의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입문하였으며 1923년부터 1년 남짓 일본 동경에 유학하였다. 1925년 백형 원기 숙제 원일과 함께 정의부 군정서및 의열단에 입단하여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백형 숙제와 함께 2년 7개월의 옥고를 치른것을 비롯하여 선생은 전후 10수회의 검속과 고문을 받았으며 1933년 중국에서 조선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북경대학 사회학과에서도 수학하였다. 1933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나온 선생은 그 뒤 10년간 시와 평론과 수필을 발표하고 국내 언론기관에 몸담기도 하였으나 1943년 가을 서울에서 피검되어 이듬해 1월 16일 새벽 북경에서 옥사하였으니 유회는 이곳 향리에 잠들어 있다. 조국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40평생을 투쟁과 영어와 고난으로 일관하였으면서도 주옥과 같은 시편을 남겨 한국시사에 길이 빛날 선생을 기려 그분의 출생지인 이곳에 이 시비를 세운다.
육우당 유허지비
이곳은 순국의사 일하 이원기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활) 서예대가 두인 이원일 문학평론가 여천 이원조 언론인 백뢰 이원창 화가 화수 이원홍 6형재가 태어나신 집터이다.
퇴계선생의 14대손이요 아은공 가호와 어머니 허씨에게서 태어나니 허씨부인은 선산 군림은의 법산공 허형의 따님이다. 6형제가 모두 조부 장릉공 참봉 치헌공 중식에게 한학을 배웠다.
위로 부터 3형제분은 1925년에 독립운동단체였던 의열단과 군정서에 입단하여 국내외에서 활동중 1927년 정유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에 연루되어 2년 7개월의 옥고를 치루었으며 계속해서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하셨다. 여천공은 독립조국과 민족문학 건설을 위하여 애쓰시다가 북녁 땅에서 옥사하셨고 백뢰공은 조선중앙일보 정경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하셨고 화수공은 19세때 선전에 입선하였는데 그해 서거하시니 미성이었다.
이 마을이 안동댐으로 수몰지역이 되어 6형제분의 생가가 안동시내 태화동에 이전되었다. 맏형 일하공께서 일찌기 6형제의 우애를 기려서 당호를 육우당이라 하셨다.
이육사문학관에서 300m 정도 거리에 있는 생가터.
안동댐 수몰로 이 곳에 있는 생가는 안동시내로 옮겨가고,
그것을 알리는 청포도 시비와 육우당 유허지비가 있다.
청포도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