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옥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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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 산23
탐방로그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 산23에 위치한 박해옥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가는 길을 이장님께서 알려주셔서 쉽게 갈 수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애국지사 박해옥의 묘
지사는 밀양인으로 단기 4256년(서기 1923년 음력 12월 4일) 안동군 남후면 개곡동에서 태어나셨다. 시조인 혁거세왕의 62세손이시고 중조는 밀성대군이시며 좌상공의 후손이시다. 부는 응택이시고 모는 김해 김씨 도업의 여이시며 배는 흥해 배씨 석주의 여이시다.
지사가 활동한 때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국권을 강탈하여 백성들은 자유없는 노예생활로 가난과 굶주림의 길곡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암울한 시대이었다. 지사가 장성한 20대에는 소위 징병1기로 일본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지사는 일본군 전선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조국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결연히 일본군을 탈출 사선을 넘어 중국군 9진구 사령부가 위치한 호남성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인 광복군 제1지대 3구대 창설요원으로 조국독립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광복군인으로서 지사는 중국대륙에 끌려나온 일본군안에 있는 한국장정들을 탈출시켜 광복군으로 포용하는 정치공작임무를 띠고 일본군 주둔지역에 잠입하여 "한국광복군으로 달려오라"는 요지의 전단을 뿌리는 등 임무를 수행하다가 서기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이듬해 6월 광복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을 모시고 해방조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지사는 귀국 후 청년활동으로 조국재건에 참여하였으나 광복군단시의 치상이 재발하여 불구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지사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선구자의 길을 살아왔으나 애통하게도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서기 1988년 5월 4일 서거하셨다. 지사의 영부인 흥해 배씨는 역경과 신고속
에서도 지극한 내조를 하면서 두 아들과 세 여식을 훌륭히 길러낸 세상에 드믄 열녀요 효부이시기에 지사의 후손과 지사를 아꼈던 모든분들은 지사의 애국정신과영부닝의 이고의 정신을 기리는 비문을 국가의 지원으로 옛 전우인 한국광복군동지 권준호가 글을 짓고 김을동이 글을 쓰다.

단기 4321년 8월 27일 (서기 1988년 10월 7일) 자 영근 보근 녀 남식 화선 남선
박해옥 애국지사의 묘소로 가는 길이다. 이장님께서 함께 동행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