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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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134
탐방로그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134 애국지사 이창선의 묘를 찾았다. 묘소 안내석 바로 왼쪽에 나 있는 산길로 50m 정도 올라가면 사적을 찾을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근수 명수 진수 종수 은수 현수 완수 응수 증손은 병두 병윤 병직 영택 병상 병환으로 후손이 번창하다.
서기 1996년 5월 일 화천군수 홍은표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134 애국지사 이창선의 묘를 찾았다.
이 곳의 GPS상의 주소는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132-1 도로변이다.
묘소 안내석의 화살표와 달리 왼쪽에 바로 있는 산길로 올라가는 길이 맞는 방향이었다.
독립유공자
이창선 선생의 묘
50m 지점 ->
화천군수
독립유공자 이창선의 묘
독립유공자 이창선 선생은 서기 1859년 9월 8일 상서면 봉오리에서 부친 이규정 공과 강릉최씨 사이에 장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품성이 강직하고 지덕을 겸비하여 봉오리 구장으로서 국운의 쇠진을 노심초사 한탄하여 마을 회의에서 오는 장날에 독립만세 시위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고 옥양목으로 5000장의 태극기를 만든 후 통문을 보내어 인근 마을 사람들을 규합 1919년 3월 28일 이날 이른 새벽에 봉화산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고 3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상서면사무소를 향해 시위 행진하여 면장과 면서기를 잡아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폭력 시위를 하며 구운리 논미리 신대리 신풍리에서 주민을 더 모집하여 1000여 명과 함께 행진 중 신읍리 막우내미에서 일본 헌병들과 싸우다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어 피체되어 같은 해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총상의 후유증으로 모진 고생 끝에 1939년도 세상을 떠났으며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자손으로 자 승갑 승만 승억 승조 손은 연수 상수 만수 흥수 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