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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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산5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기독교 성도의 묘소라고 묘비에는 되어있는데, 상석에는 '御命(어명)'이라고 씌어있다.
제4봉 정상 묘소를 지나자마자 바로 또 다른 묘소가 보였다.
이곳의 GPS 상의 주소는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산 54이다.
愛國志士 金海金公命立之墓(애국지사 김해김공 명립지묘)
김명립공의 항일투쟁 약력
김명립공은 1891년생으로 경북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에서 출생 1976년 12월 9일 향년 87세로 별세하였음(봉화군 춘양 의양리 394번지 자택에서) 1907년 문경에서 이강년이 의병을 이르켰을 당시 공은 류인석진과
김명립공의 항일투쟁 약력
김명립공은 1891년생으로 경북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에서 출생 1976년 12월 9일 향년 87세로 별세하였음(봉화군 춘양 의양리 394번지 자택에서) 1907년 문경에서 이강년이 의병을 이르켰을 당시 공은 류인석진과
합세하여 이강년의 지휘대에 들어가서 항일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음. 1907년(무신)에 이인영장군의 양주기병에 입대하여 호서창의병장이 되어 항전하였음. 그 후 이인영 허위등과 작전을 모의해서 경성에 잠입 일본통감부를 공격하다가 패전하여 허위등이 적에게 피검됨으로 뜻을 이루지 못함. 동년 문경에서 육백여명의 항일 의병이 기병함에 그에 참여하여 충북일부및 강원도 일대를 전전 이동하면서 수차에 걸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음. 동년 9월부터는 신돌석 장군부대에 들어가서 신장군의 호위병 연락병으로서 영양 일원산 부근에서 일군과 일대 격전을 전개하여 많은 일군을 사살 큰 전과를 올렸음. 1909년 김성운 이시영등과 합세하여 붕화군 재산에서 적과 격열한 전투를 전개 적수명을 사살하여 전과를 올렸으나 군비 고갈로 난처한 입장에 이르러 상관의 명에 의하여 군비조달을 목적으로 봉화군 재산면 상리 일대에를 전전하며 민가 혹은 여인숙등에서 금품 또는 물품을 제공받아 이를 기금삼고 전열을 정비해서
합세하여 이강년의 지휘대에 들어가서 항일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음. 1907년(무신)에 이인영장군의 양주기병에 입대하여 호서창의병장이 되어 항전하였음. 그 후 이인영 허위등과 작전을 모의해서 경성에 잠입 일본통감부를 공격하다가 패전하여 허위등이 적에게 피검됨으로 뜻을 이루지 못함. 동년 문경에서 육백여명의 항일 의병이 기병함에 그에 참여하여 충북일부및 강원도 일대를 전전 이동하면서 수차에 걸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음. 동년 9월부터는 신돌석 장군부대에 들어가서 신장군의 호위병 연락병으로서 영양 일원산 부근에서 일군과 일대 격전을 전개하여 많은 일군을 사살 큰 전과를 올렸음. 1909년 김성운 이시영등과 합세하여 붕화군 재산에서 적과 격열한 전투를 전개 적수명을 사살하여 전과를 올렸으나 군비 고갈로 난처한 입장에 이르러 상관의 명에 의하여 군비조달을 목적으로 봉화군 재산면 상리 일대에를 전전하며 민가 혹은 여인숙등에서 금품 또는 물품을 제공받아 이를 기금삼고 전열을 정비해서
영양방면으로 이동하여 수차의 전투에서 다대한 전과를 획득하고 지대한 전과를 올리고 전략상 제천방면으로 이동하여 연전연승 하였음. 그 후 일군의 천하가 되자 공의 지면인사가 일군헌병대에 밀고함으로 체포되어 징역 10년의 선고를 받고 대구감옥과 서울 공덕동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후 10년 만기출옥되어 향리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음.
1987년 9월 일 세움.
영양방면으로 이동하여 수차의 전투에서 다대한 전과를 획득하고 지대한 전과를 올리고 전략상 제천방면으로 이동하여 연전연승 하였음. 그 후 일군의 천하가 되자 공의 지면인사가 일군헌병대에 밀고함으로 체포되어 징역 10년의 선고를 받고 대구감옥과 서울 공덕동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후 10년 만기출옥되어 향리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음.
1987년 9월 일 세움.
애국지사의 묘소 옆에 있는 묘소. 지사의 묘비에서는 없는 이름의 묘소이었다.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만석봉 제4봉에 있는 애국지사 김명립 선생 묘소를 찾기 위해서 온 의양리 산 48-3 솥골 등산로 입구.
저 멀리 보이는 공중의 철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있다고 한다.
봉오리에 애국지사 김명립 선생의 묘소, 이곳 등산로 입구를 시작점이다. 여기서부터 가는데 20분 정도 걸린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 두 갈래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한다.
제2봉 올라가는 입구의 넓은 공터.
남평문씨의 묘소. 이 묘소 좌측으로 올라가야 한다.
제2봉을 올라가는 길에도 두 갈림길이 나온다.
제4봉 정상이 목표이니 아무 쪽으로 가도 된다.
제2봉을 옆으로 돌아서 다 내려왔다. 이제부터는 제3봉으로 올라가야 한다.
제3봉을 지나서 제4봉 방향으로 가는 길..
제3봉을 내려와서 제4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좌측에 멀리 묘소가 보인다.
제4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묘소가 보인다
제4봉 정상에서 만난 묘소. 이 묘소를 왼쪽으로 지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