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벽 항일의거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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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산237-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항일의거기념비
금세기 초 이 고장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주권을 찾으려는 민족의 항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니 처음에는 한말의 의병항쟁이요 그 다음이 독립만세운동이다.
1908년 5월 18일 태백산 방면의 변학기, 성익현, 김상태 등 천 여 의병은 여기 섰던 30여 그루 느티나무 아래에 몸을 숨겼다가 진입하는 일본군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또 1919년 4월 5일 옛 서벽 장터에서는 정태준, 이구락, 이봉락 등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많은 고초를 당했다.
광복을 맞은 지 어언 40년 그때의 한 그루 느티나무여! 너는 기억하리라, 처절한 싸움 그 성난 파도소리를! 너는 알리라, 선열들의 그 숭고한 애국심을!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산 237-1 서벽초등학교 앞 서벽 항일의거기념비를 찾아왔다.
항일의거 기념비(抗日義擧紀念碑)
항일의거기념비
이 지역에서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우리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선조들의 항쟁이 여러 차례 있었던 바 항일의병과 독립만세운동이 그것이다. 항일의병중 대표적인 것이 성익현, 이강년, 김상태 연합 의진으로 의진의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경북 봉화군 내성을 점령하기로 하고 1908년 5월 18일 의진의 내성을 공격하러 가는 길에 봉화군 서벽리 이곳 느티나무 아래에서 일본군 정찰대를 발견하고 이를 공격하여 수십 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 하나의 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4월 5일 이곳 서벅리 동산 위에서 정태준,이인락,이봉락 3명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들은 곧 주재소 경차들에 검거되어 큰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러첨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이 자리에 선열들이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1984년 12월 항일의거기념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