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석면 수하리 808-3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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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대길에서 행치령로가 갈라지는 곳에 앙천루라는 커다란 표석이 있다. 앙천(仰天)이란 하늘을 우러른다는 뜻으로 4.3 동창 만세를 주도했던 김덕원 선생께서 이곳에서 하늘에 탄식하며 나라의 독립을 기도하셨던 곳이다. '앙천'은 이 곳의 공식 지명은 아니었으며 1998년 동창만세운동 기념사업회가 들어서며 조성한 이름이라 한다. 용호터에 김덕원 선생이 머물게 된 경위는 언뜻 가슴이 아프다. 당시 김덕원 선생은 만세 주도자로 일경이 선생의 집도 불태울만큼 감시가 심했고 마을사람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 때 용호터에 사는 연규환 선생이 자신의 부엌에 있던 다락(부뚜막과 초가집 천정 사이에 뚫린 공간)에 3년가량 김덕원 선생을 숨겼다. 어두운 밤에 김덕원 선생이 움직이면 가끔 요란한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연규환 선생의 아내인 장옥환 여사는 슬기롭게 대처했다. "우리 집에 도깨비가 있는지 한밤에 저렇게 요란한 소리가 난다, 그러나 착한 도깨비라서 절대 해치거나 그러지 않아 가만히 둔다." 이 사연이 알려져 사람들이 그 집을 도깨비 집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내려온다. 이러한 사연은 1970년대 이후에야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
독특한 것은 이 곳에 가수 나훈아가 직접 성금을 내서 세운 노래비가 있다는 것이다. 나훈아씨가 김덕원 선생이 이곳에서 피눈물로 조국의 독립을 하늘에 기원한 사연을 알고 크게 감격하여 성금을 희사했고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여러 추모 비석들을 모셔둔 공간이 보인다.
東學의 白衣將軍 金德元 義士 追慕碑(동학의 백의장군 김덕원 의사 추모비)
동학의 백의장군 김덕원 의사 추모비
때는 19세기 조선조 말엽 탐관오리의 횡포와 학정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헤매이고 특히 동학도(천도교인)에 대한 약탈과 추방은 극에 달하여 생존마저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894(갑오)년 몸에 일어난 동학혁명은 이러한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민중혁명이었다. 그러나 불의에 일본군이 개입하게 되자 그해 9월에 동학 2세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의 기포령에 따라 동학군이 총궐기하여 침략자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한 항일구국 혁명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그리하여 이해 10월에 이곳 홍천군에서 차기석 대접주를 중심으로 혁명의 횃불을 높이 들고 앞장선 장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19세 청년 접주 김덕원 의사이다. 이 고장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김의사는 의사는 의(義) 용(勇) 지(智)를 겸비한 장골이었다. 당시 이 고장에서 집결한 천 수백명의 동학군은 한때 동창을 점거하였으나 관군을 상대로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 대접전에서 8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항전 끝에 천추의 한을 남기고 좌절되었다. 결국 동학혁명은 왜놈의 신무기 앞에 고배를 들었으나 위대한 혁명정신은 그후 1919년 기미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승화되어 전국에 메아리치게 되자 이해 4월 3일 이곳 홍천군 동창마을에서는 동학군 김덕원 의사 주도 아래 내촌면 내면 화촌면 서석면 인제 기린면 일대에서 수천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격렬하게 대항하던 중 8열사가 왜놈들의 총탄에 맞아 쓸어졌으며 김덕원 의사는 깊은 총상을 입은 채 은신 생활 3년에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며 초인적인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내촌면 장수원에서 왜놈에게 검거되어 충청형무소에서 4년간 옥고를 치루면서도 비밀리에 항일독립을 모의하다가 수차 심한 고문으로 중병까지 얻어 출옥하였다. 그로인해 김의사는 실명까지 겹치는 불운 속에서 전전하다가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시고 1928년 5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오호라! 우리 후학들은 아직도 님의 유해를 찾지 못한 죄책감에 머리 숙여 속죄할 뿐 오직 숭고한 님의 순국정신과 유지를 길이 받들어 계승할 것을 다짐하오니 님의 성령이시여. 하눌님의 감응으로 부디 성령 출세하시어 후손과 후학들의 심령 속에 무궁토록 장생하소서. 님께서 외친 보국안심 척왜구국의 고함이 메아리친 동창의 산하여! 왜놈의 총탄을 맞고도 불사조처럼 한 평생 불의와 싸우시다가 홍천의 수호신이 되어 조국의 품에 잠드신 님이시여! 님의 얼은 정녕 동학의 얼 일지니 조국을 통일하고 온누리가 하나되는 지상천국을 꽃 피우게 하소서! - 1998년 3월 1일
때는 19세기 조선조 말엽 탐관오리의 횡포와 학정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헤매이고 특히 동학도(천도교인)에 대한 약탈과 추방은 극에 달하여 생존마저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894(갑오)년 몸에 일어난 동학혁명은 이러한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민중혁명이었다. 그러나 불의에 일본군이 개입하게 되자 그해 9월에 동학 2세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의 기포령에 따라 동학군이 총궐기하여 침략자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한 항일구국 혁명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그리하여 이해 10월에 이곳 홍천군에서 차기석 대접주를 중심으로 혁명의 횃불을 높이 들고 앞장선 장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19세 청년 접주 김덕원 의사이다. 이 고장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김의사는 의사는 의(義) 용(勇) 지(智)를 겸비한 장골이었다. 당시 이 고장에서 집결한 천 수백명의 동학군은 한때 동창을 점거하였으나 관군을 상대로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 대접전에서 8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항전 끝에 천추의 한을 남기고 좌절되었다. 결국 동학혁명은 왜놈의 신무기 앞에 고배를 들었으나 위대한 혁명정신은 그후 1919년 기미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승화되어 전국에 메아리치게 되자 이해 4월 3일 이곳 홍천군 동창마을에서는 동학군 김덕원 의사 주도 아래 내촌면 내면 화촌면 서석면 인제 기린면 일대에서 수천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격렬하게 대항하던 중 8열사가 왜놈들의 총탄에 맞아 쓸어졌으며 김덕원 의사는 깊은 총상을 입은 채 은신 생활 3년에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며 초인적인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내촌면 장수원에서 왜놈에게 검거되어 충청형무소에서 4년간 옥고를 치루면서도 비밀리에 항일독립을 모의하다가 수차 심한 고문으로 중병까지 얻어 출옥하였다. 그로인해 김의사는 실명까지 겹치는 불운 속에서 전전하다가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시고 1928년 5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오호라! 우리 후학들은 아직도 님의 유해를 찾지 못한 죄책감에 머리 숙여 속죄할 뿐 오직 숭고한 님의 순국정신과 유지를 길이 받들어 계승할 것을 다짐하오니 님의 성령이시여. 하눌님의 감응으로 부디 성령 출세하시어 후손과 후학들의 심령 속에 무궁토록 장생하소서. 님께서 외친 보국안심 척왜구국의 고함이 메아리친 동창의 산하여! 왜놈의 총탄을 맞고도 불사조처럼 한 평생 불의와 싸우시다가 홍천의 수호신이 되어 조국의 품에 잠드신 님이시여! 님의 얼은 정녕 동학의 얼 일지니 조국을 통일하고 온누리가 하나되는 지상천국을 꽃 피우게 하소서! - 1998년 3월 1일
노래비 - 이 소원 잊지 말아주(양천봉) / 작사 정두수. 작곡 정경천. 노래 나훈아
하늘이여 하늘이여 내 조국의 하늘이여 이 겨레를 살피소서 이 민족을 살피소서. 빼앗긴 나라를 찾는 길이라면 이 한 목숨 바치리다 천만번 바치리다. 양천봉 산마루에 타는 노을은 지나가는 바람 잡고 울고 있구나 어허-어허- 하늘이여. 세월은 한줄기 저 바람 같은 것 흘러가는 구름이여 무심한 강물이여. 거칠던 이 들녘에 새 봄이 오면 피눈물로 빌고 빌던 소원 잊지 말아주
이천년 삼월 일일 한국서가협회 강원도지회장 이만진 쓰다
- 이 노래비는 가수 나훈아씨의 성금으로 세웠다. 나훈아씨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김덕원 의사가 이 봉우리에서 피눈물로 조국의 광복을 하늘에 기원한 사연을 알고 크게 감격하여 뜨거운 추모의 정으로 성금을 희사했다.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그 성금으로 여기 가사를 적어 노래비를 세웠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내 조국의 하늘이여 이 겨레를 살피소서 이 민족을 살피소서. 빼앗긴 나라를 찾는 길이라면 이 한 목숨 바치리다 천만번 바치리다. 양천봉 산마루에 타는 노을은 지나가는 바람 잡고 울고 있구나 어허-어허- 하늘이여. 세월은 한줄기 저 바람 같은 것 흘러가는 구름이여 무심한 강물이여. 거칠던 이 들녘에 새 봄이 오면 피눈물로 빌고 빌던 소원 잊지 말아주
이천년 삼월 일일 한국서가협회 강원도지회장 이만진 쓰다
- 이 노래비는 가수 나훈아씨의 성금으로 세웠다. 나훈아씨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김덕원 의사가 이 봉우리에서 피눈물로 조국의 광복을 하늘에 기원한 사연을 알고 크게 감격하여 뜨거운 추모의 정으로 성금을 희사했다.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그 성금으로 여기 가사를 적어 노래비를 세웠다.
앙천봉 약사
여기는 기미년 4월 3일 이 고을 동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 의사가 왜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실명되기 전 왜관헌의 수배망을 피해 다닐 무렵 이 산봉우리에 올라 망국을 탄식하고 밤을 지새우며 「이 민족 이 나라의 운명은 어디로 가나이까! 이 민족을 살피소서 이 나라를 살피소서」하고 하늘을 우러러 눈물로 호소하던 곳이다. 의사의 이러한 우국충정을 기려 이 산봉우리를 앙천봉이라 이름하고 여기에 누각을 지어서 앙천루라 하였다. 누각 이름은 전 문교부 장관 윤택중님이 짓고 현판은 명필 일중 김충현 선생의 글씨이다. 1997년 4월 3일 광복 50주년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
여기는 기미년 4월 3일 이 고을 동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 의사가 왜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실명되기 전 왜관헌의 수배망을 피해 다닐 무렵 이 산봉우리에 올라 망국을 탄식하고 밤을 지새우며 「이 민족 이 나라의 운명은 어디로 가나이까! 이 민족을 살피소서 이 나라를 살피소서」하고 하늘을 우러러 눈물로 호소하던 곳이다. 의사의 이러한 우국충정을 기려 이 산봉우리를 앙천봉이라 이름하고 여기에 누각을 지어서 앙천루라 하였다. 누각 이름은 전 문교부 장관 윤택중님이 짓고 현판은 명필 일중 김충현 선생의 글씨이다. 1997년 4월 3일 광복 50주년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
하늘을 우러르며 양천봉에서
밤이면 밤마다 용호천 돌자갈을 씹으며 흐르는 냇물소리 들려오고 멀리 동창마을 마방의 불빛과 달빛 밟고 거닐던 산길도 보입니다. 간악한 왜적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긴 치 어느덧 십년 의혈의 동지 여덟은 총 맞아 먼저 가고 수많은 백성들이 상처 입었습니다. 하늘이여 이 민족 이 나라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시옵니까. 일가 친척 대대로 모여살던 마을은 왜적들이 지른 불로 타없어지고 고향 잃은 이웃들은 살 길을 찾아서 낯선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이 한 몸을 사르어 조국의 제단에 향불되게 하옵소서. 하늘이여. - 일천구백구십팔년 시월 만해문학상 수상작가 민영 짓고 강원도교원 서예교육연구회장 한은석 쓰다.
밤이면 밤마다 용호천 돌자갈을 씹으며 흐르는 냇물소리 들려오고 멀리 동창마을 마방의 불빛과 달빛 밟고 거닐던 산길도 보입니다. 간악한 왜적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긴 치 어느덧 십년 의혈의 동지 여덟은 총 맞아 먼저 가고 수많은 백성들이 상처 입었습니다. 하늘이여 이 민족 이 나라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시옵니까. 일가 친척 대대로 모여살던 마을은 왜적들이 지른 불로 타없어지고 고향 잃은 이웃들은 살 길을 찾아서 낯선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이 한 몸을 사르어 조국의 제단에 향불되게 하옵소서. 하늘이여. - 일천구백구십팔년 시월 만해문학상 수상작가 민영 짓고 강원도교원 서예교육연구회장 한은석 쓰다.
여기 하늘 우러러
여기 누가 쓰러져 아름다운 꽃인가 여기 누가 하늘 우러러 이 산하 푸르른가.
한 개의 별이 되고서 한 개의 별을 노래하고저 사람으로 진정 사람으로 걸어가고저
어두운 밤 잠 못 이루어 저 바람 속에 울었느니 먹구름 천둥 번개 앞에 홀연 일어섰느니
입도 눈도 빼았겨 서릿발 칼날 위에 쓰러진 목숨 당신이 뿌린 거룩한 피가 오늘 대지 위에 꽃보다 붉어라.
당신의 뜨거운 혼이 다시 살아 조국의 가슴에 큰 강물 흘러라.
시인 토지문화관 관장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이성선
여기 누가 쓰러져 아름다운 꽃인가 여기 누가 하늘 우러러 이 산하 푸르른가.
한 개의 별이 되고서 한 개의 별을 노래하고저 사람으로 진정 사람으로 걸어가고저
어두운 밤 잠 못 이루어 저 바람 속에 울었느니 먹구름 천둥 번개 앞에 홀연 일어섰느니
입도 눈도 빼았겨 서릿발 칼날 위에 쓰러진 목숨 당신이 뿌린 거룩한 피가 오늘 대지 위에 꽃보다 붉어라.
당신의 뜨거운 혼이 다시 살아 조국의 가슴에 큰 강물 흘러라.
시인 토지문화관 관장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이성선
김덕원의사 천작충혼 추원비
반만년의 문화사를 계승한 역사민족 대한제국이 국경운흘하야 세도가 변천하고 민심이 이산이라 조정에는 정상배 사시군이 판을 치고 한말에 매관매직과 부정부패의 풍토는 척결되지 못한채 국가는 병들었으니 오호라! 일제의 악랄한 불법침범을 받고 국망하였으니 한민족 수난의 오사는 강요 당하였다. 연이나 동방의 군자국의 선비정신은 죽지 아니했고 사생취의 천작정신은 살아 있으니 물걸리의 김덕원의사가 바로 그 분이시다. 공의 시조는 신라시대의 대보공 김알지이시니 신라의 김씨제왕시대를 연 비조이며 후대 경주김씨 종조하니라. 누전하야 신라30대 제왕으로 문무대왕이니 문무를 겸비한 제왕으로 세계사에 유례를 볼 수 없는 위대한 제왕이었다. 삼한 민족의 분립된 국가를 일민족국가로 통일을 성취하여 대의를 세웠으며 침입한 당나라 이민족이 백제땅과 고구려땅에 당의 통치기구인 도호부를 세우려 할때 문무대제는 민족의 대의를 창려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유장들과 연합군을 창설하니 유민의 호응을 크게 언든바 되어 중원 지나족계보에 당군주력부대 20만명을 요동 매소성에서 섬멸하고 아 한민족 구토에서도 당나라 승려를 축출하여 대업을 완성하였다. 경주 황룡사구층탑석지에 새겨진 애국애족의 화랑도 정신은 세계9족은 화합하고 삼한민족은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과합삼한이 위일국가의 민족
척야산
양천루
잔성(殘聲)
드높인 함성 모아든 깃발 기미해 팔열사 동학의 학백의혼 고이 잠드신 여기는 태버린 언제나 내 조국 그 님은 못본 독립 한서린 이 땅 위에 이웃사촌 모두어 무궁화꽃 피우고 님의 뜻 기려 내일을 키워가리.
드높인 함성 모아든 깃발 기미해 팔열사 동학의 학백의혼 고이 잠드신 여기는 태버린 언제나 내 조국 그 님은 못본 독립 한서린 이 땅 위에 이웃사촌 모두어 무궁화꽃 피우고 님의 뜻 기려 내일을 키워가리.
잔성(殘聲)
드높인 함성 모아든 깃발 기미해 팔열사 동학의 학백의혼 고이 잠드신 여기는 태버린 언제나 내 조국 그 님은 못본 독립 한서린 이 땅 위에 이웃사촌 모두어 무궁화꽃 피우고 님의 뜻 기려 내일을 키워가리.
드높인 함성 모아든 깃발 기미해 팔열사 동학의 학백의혼 고이 잠드신 여기는 태버린 언제나 내 조국 그 님은 못본 독립 한서린 이 땅 위에 이웃사촌 모두어 무궁화꽃 피우고 님의 뜻 기려 내일을 키워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