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 113-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 113-1 낙강칠현 사망정(四望亭) 애국지사 만회 이병회 선생 추모비를 찾았다.
四望亭(사망정)
낙강칠현 낭만공원
봉화산 안내도
愛國志士 晩海 光山 李先生 追慕碑(애국지사 만해 광산 이선생 추모비)
愛國志士 晩海 光山 李先生 追慕碑(애국지사 만해 광산 이선생 추모비)
선생의 성은 이씨요 휘는 병회요 자는 응두요 호는 만회요 관은 광산이다. 광산이씨는 고려 현종조에 거란 침입을 물리친 전공으로 성명을 하사받고 광산군에 봉하여진 이종금공이 시조이다. ..중략...1865년 7월 12일 고 유영과 비 성주도씨의 장남으로 고탄리 본제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중후하고 지기가 강건하여 소시에 동년배와 어울릴때 항상 영수격이었고 다소년 장자로 즐거이
그 휘하에 있었다. 성장하여는 족조 묵암 정운공과 소암 종희공에게 수학하고 나아가 이만구 선생에게 종학하여 크게 학문이 성취하였다. 선생은 학문에 열중하는 한편 근검절약하고 농감에 철저하는 등 치산에도 유의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조선을 치제하는 등 사에 조금도 소흘함이 없었고 문중의 돈목과 대소가의 호합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그 식견과 경륜이 공공사회를 위하여 이바지할만 하였으나 당시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진작 서구고학문명을 수용한 일본이 바야흐로 제국주의적 침략의 마수를 뻗쳐 우리의 국권을 박탈하고 우리 국민과 국토를 여지없이 유린하고 있었다. 그 억울하고 통분한 세월이 10년이 지난 1919년 파리세계평화회의 개최를 계기로 우리의 자주권을 부르짖으며 그 동안 쌓이고 쌓인 민족적 울분을 터뜨린것이 우리의 역사적인 3.1독립만세운동이다. 이 거족적 만세운동에 발맞추어 이나라 유림들이 일본의 간교함을 만천에 폭로하고 우리의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장문의 성명문을 파리세계평화회의에 제출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이다. 이 장서는 영남 유림을 대표한 곽종석공과 호남유림을 대표한 김복한공을 필두로 하였으니 전국의 유림대표 137인이 연서로 제출되었다. 선생은 바로 그 연서 중의 한분이시다. 당시 왜인들의 총검앞에 우리의 생명이 초개시 된던떄라 생사를 초월한 정의감이 없이 어찌 서명이 가능하였으리오 여기서 선생의 열화같은 의기를 볼수있다. 이 장서는 김창숙선생을 통하여 김규식선생에게 전달되어 평화회의에 제출코자 하였으나 일인의 간교한 와교술로 인하여 무위로 끝나고 이를 계기로 일인들의 압제는 더울 가혹하여 장서에 연서한 우리 지사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초는 이루 말 할수가 없었다. 선생도 또한 예외일수가 없었다. 일경의 악형으로 불치의 병인을 얻은채 여생을 양암 박돈 어산 김희록 공산 공준필 와산 김영학 백괴 우하구 이고 최우동 등 당대의 짓 명류들과 우국의 정을 나누다가 1927년 9월 27일에 서세하시니 향년 63세였다. 선생의 서세후 10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에도 후진들이 선생의 높은 뜻을 잊지못하여 추모비를 세우고자 하여 불령에게 그 비문을 청하기에 위와 같이 정리하였다. 생각컨대 이 비는 불의를 매도하는 상징으로 중류의 지
주 처럼 길이 우뚝할것이다. 바라건대 이 비앞에 서는 선남선녀들이여! 부디 옷깃을 며미고 다시 한번 민족의 정기를 돼새길 지어다.
만회 선생 추모비 건립 성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