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555-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분강개하여 약관의 열혈애국청년은 결연히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독립군 무장투쟁의 본거지인 서간도로 달려갔다. 님은 서로군정서 독변 이상룡의 추천으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했다. 교장 이시영 교관 이청천 이범석의 훈도를 받으며 대한의 장한 사관생도로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천지를 진동하는 독립만세의 함성과 함께 요원의 불길처럼 삼천리 강산에 퍼진 거족의 3.1운동이 터지자 직접 조국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기수가 되어 동지 김원봉과 상해로 가서 포탄제조술을 배워 간도로 돌아와 의열단을 창단했다. 이로부터 의열단의 맹렬한 항일투쟁은 찬한하게 전개되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
게 했다. 1920년 동지를 파견 상해로부터 폭탄 13개 권총실탄 80발 폭약 3포대등 다량의 폭발물을 만주 경유 경남 진영까지 운송하여선 일제 식민지통치기관폭파를 계획하여 서울에 거점을 확보 운송중 변절자의 밀고로 의열단 전사들은 모두다가 검거되고 말았다. 천인공로할 잔혹한 조사끝에 경성지방재판소에서 7년의 형을 언도받으니 이를 세에 '진영역사건' 이라 한다. 옥고를 치르고 출감하자 월남 이상재가 이끄는 신간회에 가담 고령지회를 조직하여 민족혼을 고취하시니 홀연한 지주였으니 1945년 드디어 조국은 광복이 되었다. 감격의 태극깃발은 강토를 뒤덮었다. 동지 임정요인
의 환국을 뜨거운 포응으로 맞이했건만 아! 조국은 분단되고 민족은 분렬되고 강산은 동족상잔의 선지피로 붉게 물드렸도다. 1977년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빛나는 건국포장을 받은채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1980년 1월 23일 8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독립투사의 생애를 고요히 마치고 영면하셨도다.
님이여! 그간에 삭풍이 팔을 에이는 만주벌 풍찬노숙이 그 몇번이며 달지는 이역고성하에 조국을 그리던 꿈은 그 몇번이며 감옥의 긴긴세월에 뼈를 깍고 살을 지미는 고문의 고초가 그 얼마였드뇨. 조국
님이여! 그간에 삭풍이 팔을 에이는 만주벌 풍찬노숙이 그 몇번이며 달지는 이역고성하에 조국을 그리던 꿈은 그 몇번이며 감옥의 긴긴세월에 뼈를 깍고 살을 지미는 고문의 고초가 그 얼마였드뇨. 조국
의 광복에 청춘을 다 바친 님의 숭고한 은덕에 지금 조국은 전진한 민족은 자유를 구가하나이다. 님이여 구천에서 영원히 호국의 영령으로 조국을 수호하소서 우리군민은 우리고장의 자랑으로 나라의 큰별을 영원불멸토록 빛나게 이 돌에 색이나이다.
해영 신철휴 선생 기념비 앞에 약력을 새긴 조형물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애국지사 해영 신철휴 선생 기념비
애국지사 해영 신철휴 선생 기념비
고령출신으로 1919년 9월 간도신흥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1월 9일 만주 길림성 파호문에서 의열단 결성에 참여, 밀양경찰서 폭파계획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신철휴(1898.5.17~, 1990년 애국장, 1997년 건국포장)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건립함.
고령출신으로 1919년 9월 간도신흥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1월 9일 만주 길림성 파호문에서 의열단 결성에 참여, 밀양경찰서 폭파계획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신철휴(1898.5.17~, 1990년 애국장, 1997년 건국포장)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건립함.
애국지사 해영 신철휴 선생 기념비
여기 밤하늘의 성좌처럼 영원히 빛나는 거룩한 위인이 있다. 그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야 생애를 민족의 제단에 바친 선열이다. 민족사에 찬연한 광휘를 천추에 발한 유서깊은 민족의 성지인 고령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조국에 바치신 그 이름이 해영 신철휴 선생이시다. 님은 1898년 고종 35년 5월 17일 신진구공과 절부 달성서씨 부인의 둘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시니 본관은 고령이요 단종조 충신 귀래정 신말단공의 14세손이다. 님은 어려서는 효성과 우애로 향리에 칭송되었고 한학을 수학하야 ?축과 조예가 범중에 탁매하였다. 때에 국운이 풍전등화같아야 조국이 일제에 병탄됨에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