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병 22인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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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영귀미면 성수리 47-8
탐방로그
홍천군 동면 성수리 도로변 한갑복 의병장과 항일의병 22인의 추모비를 찾았다. 한갑복 의병장을 비롯해 당시 함께 전사한 의병 22명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자 2011년 10월 18일에 홍천군 및 홍천문화원에 의해 건립되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제 1890호
훈장증
고. 한갑복

위는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건국훈장 애국장
1991년 8월 15일
대통령 노태우

국무총리 정원식
이 증을 건국훈장부에 기입함
총무처장관 이연백
추모시

을사, 정미로 거듭된 일제 참탈에 저항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선
한갑복 의병대장이시여!
의병 22인 용사들이시여!
국권을 잃은 암울한 조국 하늘의
먹구름을 거둬주신 고마운 충혼들이시여!

임들이 다져놓은 초석 위에
우리는 번영의 햇불을 밝혔습니다.
거룩한 충혼들이시여!
천세 만세 호국의 수호신으로
길이길이 이곳에 안식하소서.

서기 2011년 12월 10일
추모시 문화연구소장 전상기 지음
추모시 비석 세운 사람 성균관 전학
원세동 구십 오세옹
홍천군 동면 성수리 도로변 한갑복 의병장과 항일의병 22인의 추모비
抗日義兵將 韓甲福 抗日義兵 二十二人 追慕碑(항일의병장 한갑복 항일의병 22인 추모비)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1907년 마침내 한국 군대마저 강제해산시켰다. 이에 분개한 우국청년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정미의병으로 봉기하였다. 원주 감영 진위대 소속 정교였던 한갑복(韓甲福)은 평소 알고 지내던 홍천 동면 덕우마을의 안응순(安應淳)을 찾아가 함께 의병을 조직하고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고문 안응순(安應淳), 책사 이병두(李炳斗), 연락책 김춘선(金春先)으로 구성된 의병부대는 수백 명의 군사로 홍천은 물론 지평, 원주, 횡성, 평창, 영월 등의 영서지역과 멀리 강릉에까지 진출하여 왜병에 치명타를 가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한갑복 의병장과 남은 군사들은 1907년 11월에 양덕원 전투와 대미산성 전투에 이어 11월 28일 동면 화방마을 가래골에서 숙영하던 중 왜병의 기습을 받아 22명의 대원들과 함께 치열한 접전 끝에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이에 정부에서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지역주민 이제선(李悌善)의 증언을 토대로 원세동(元世東) 등 지역유지들이 수십 년간 자료를 찾아 마침내 전적지와 유해를 확인하였으며, 고귀한 그 충의를 만대에 기려 교훈으로 삼고자 홍천군민의 뜻을 모아 여기 추모비를 세운다.
조국에 바친 그 뜨거운 충혼,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빛날지니 장하신 그 이름, 영령들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2011년 10월 18일
홍천군수 허필홍
홍천문화원장 허기영
도움주신 분들
원세동 안경환 박희경 정진환 허만형 원향란 허민영 안창용 허만목 청주한씨종친회
글 향토문화연구소장 전상기. 향토문화연구위원 한승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