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 산28-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 산28-1 시티재 안강휴게소 애국지사 김만득공 항일기공비를 찾아왔다.
애국지사 김만득공 항일기공비
화랑의 푸른 얼이 서려있는 이곳 서라벌 옛 언덕에 금세기의 전반 36년간에 걸쳐 유독한 착취수단으로 이 강토를 유린했던 침략자 일본과 맞서 행쟁의 횃불 높이 들었던 항일투사를 여기 돌에 새기노니 그는 곧 이 고장출신 김만득(金萬得)지사이다.
공의 본명은 철해(徹海)이다. 경주김씨이니 신라 경순왕의 자 대안군 휘 은열 40대손으로 1916년 5월 14일 경주시 안강읍에서 태어났스니 부의 휘는 성진(聖鎭)이요 모는 김해김씨이니 휘는 봉선(鳳先)이다. 안강보통학교를 나와 경주 손씨가문에 출입한 후 잠시 안강 수리조합에서 재직하다가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에 가서 유학하던 중 일인들
공의 본명은 철해(徹海)이다. 경주김씨이니 신라 경순왕의 자 대안군 휘 은열 40대손으로 1916년 5월 14일 경주시 안강읍에서 태어났스니 부의 휘는 성진(聖鎭)이요 모는 김해김씨이니 휘는 봉선(鳳先)이다. 안강보통학교를 나와 경주 손씨가문에 출입한 후 잠시 안강 수리조합에서 재직하다가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에 가서 유학하던 중 일인들
의 차별대우에 분개하여 일대소란을 일으켰다가 경시청에 잡혀 여러 나날을 갖은 수단으로 고문을 당하며 혹독한 옥고를 치른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들의 감시아래 상처받은 몸을 요양했으니 피 끓는 젊은 가슴에 치솟는 배일감정은 끝내 국권회복에 일생을 바치기로 다짐하고 지하운동으로 들어가 뜻을 같이할 동지를 규합 중 다시 그 정보가 누설되어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번개처럼 국경을 넘어서 중국으로 망명 그로부터 줄곧 광복에 이르기까지 항일전선에 몸을 바쳤다.
처음에는 중국군사위원회 산하 충의구국군 제1지대의 유격대에 배속되어 풍찬노숙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대륙만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그 가슴속에는 언제나 나라없는 슬품에 잠겨있던 중 중경 임시정부 김구주석 예하에 한국광복군 창설을 보게되자 공은 그 총사령 이청천 장군 휘하 정보 제3분처에 소속하여 지칠 줄 모르고 싸워 기어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쟁취하자 중국군과 같이 상해 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제에 동참 뼛골에 사무친 여한을 풀고 그 이듬해 봄 임시정부 요원들과 함께 그립던 조국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아! 거룩한 그의 일생 몸을 포의에서 일으켜 때를 국보난간의 여울목에 서서 강간의 범람을 가로 막으며 배달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밣혔도다
정부는 그 업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이어서 공이 넘나든 이 시티재 마루에 기념비를 세워 영세 무궁토록 애국애족의 교육장으로 삼고져 한다.
처음에는 중국군사위원회 산하 충의구국군 제1지대의 유격대에 배속되어 풍찬노숙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대륙만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그 가슴속에는 언제나 나라없는 슬품에 잠겨있던 중 중경 임시정부 김구주석 예하에 한국광복군 창설을 보게되자 공은 그 총사령 이청천 장군 휘하 정보 제3분처에 소속하여 지칠 줄 모르고 싸워 기어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쟁취하자 중국군과 같이 상해 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제에 동참 뼛골에 사무친 여한을 풀고 그 이듬해 봄 임시정부 요원들과 함께 그립던 조국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아! 거룩한 그의 일생 몸을 포의에서 일으켜 때를 국보난간의 여울목에 서서 강간의 범람을 가로 막으며 배달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밣혔도다
정부는 그 업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고 이어서 공이 넘나든 이 시티재 마루에 기념비를 세워 영세 무궁토록 애국애족의 교육장으로 삼고져 한다.
유족은 부인 손수주 슬하에 1남3녀가 있스니 자는 영근이요 여는 조봉 광봉 주봉이다. 손은 정철 정도 정혜 정미 정인 정순이요 증손은 수기 만기 대곤이다.
1996년 8월 15일
1996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