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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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평기리 317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광복회. 일제에 항거하여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로서 일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기 시작한 1895년 을미사변부터 광복때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하였거나, 옥고를 치른 사람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람과 그들의 유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정기 선양과 통일조국 촉성에 역사적 소임을 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광복군. 1940년 9월 17일 김구 등의 주도하에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 독립군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연합국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3.1운동.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전 민족이 봉기한 항일독립운동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최대규모의 민족운동이며, 제1차 세계대전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독립운동이었다.

중국지역 독립운동. 한반도에서 독립군은 일본군의 감시와 탄압으로 국내활동을 할 수 없어서 연해주와 중국 동부지역에서 간다로 이주한 한인들과 함께 만주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신사참배운동. 강만조 전도사(봉회교화, 상림교회, 평사교회 3개 교회 겸임 전도사)를 중심으로 3개교회 지도자들이 비밀리에 일제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며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43년 6월 '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자'라는 설교가 투옥의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이로써 일제는 강만조 전도사를 비롯하여 3개 교회 지도자 14인을 식민통치와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 투옥하였다. 일본경찰은 독립운동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3개 교회의 시설물을 부수고 모든 문서를 압수하였으며 더 나아가 독립운동및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천기도 강령'이란 제목으로 교회 강대상에 비밀엄수, 일본타도, 영미만세, 조선독립만세등의 글을 써놓기도 하였다. 14인이 투옥된 이후 3개 교회는 모두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들은 체포된 이후 재판도 없이 경산경찰서 유치장과 대구형무소에서 17개월동안 갖은 옥고를 치르다 1944년 11월에서야 석방되었다.

강만조, 안치대, 안치준, 김종만, 이종호, 현영조, 현용주, 김종호, 김선암, 유한곤, 조달용, 현준이

김달윤,김무생,김성욱,김용학,김정룡,나상기,박만선,박정환,백남채,서동일,송광웅,이봉조,최경학최두욱,최학선,허경인,허동상,허병률,현영만
대왕산 죽창의거 의거지 29인. 1944년 7월 15일 안창률 외 28인은 일제의 징용, 징병에 저항하기 위해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하기로 결의하였고 7월 25일 밤 29명 전원은 죽창으로 무장하고 사월굴에 모여 일제의 무력 진압에 맞서기 위해 의거대를 조긱하였다. 대왕산 정상에 3개의 막사를 지어 진지를 구축하고 3개소대 및 특정대, 정보연락대, 결심대를 편성하였다. 7월 26일 안창률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무장한 일본경찰 30여명을 죽창과 투석으로 맛서 물리쳤고, 8월 5일에도 일본경찰을 격퇴하였으나 8월 10일경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산을 내려왔ㄷ가 모두 체포된 후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광복을 맞아 풀려나게 되었다.

김경룡, 김명돌, 김위도. 김인봉, 김임방, 김특술, 김홍준, 박영식, 박재달, 박혜광, 배상연, 성상룡, 송수답, 안창률, 이종태, 조영모, 채원준, 채찬원, 최기정, 최덕종, 최동식, 최만갑, 최순한, 최태만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아니고 항일운동기념탑이다.
항일운동 기념탑
일본의 36년간 억압과 식민지 생활에서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야 2021년 5월 건립하였다.
2021년 5월
항일운동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