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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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203
탐방로그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203 ‎대야성 동쪽 자락 함벽루 입구 황우산 기슭에 있는 애국지사 관암 강홍렬 비를 찾아왔다. 여러개의 비석 뒤쪽에 정성스럽게 3면으로 둘러싸인 강홍열 선생의 비석이 있었다. 비석이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증손자의 요청에 의해 전 합천군수 강석정께서 1992년 비석 글씨에 색채를 넣고 비석 주위에 주물로 된 원장을 두르고 바닥에는 보도블록을 깔아서 정비를 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합천 대야성(陜川 大耶城)
경상남도 기념물 제133호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이 성은 신라 서부지역의 요새로서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에는 신라와 후백제 및 고려가 각축을 벌였던 대표적인 접전지역 이었다. 642년(신라 선덕여왕 11)에는 백제의 침공으로 함락되어, 성주(城主)인 도독(都督) 김품석(金品釋)과 그 부인 [무열왕 김춘추의 딸]이 죽고 신라인 1천여 명이 포로가 된 곳이다. 또한 통일신라 말기인 920년에는 견훤(甄萱)이 이끄는 후백제군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그 뒤 고려가 점령하였다가 다시 후백제에게 넘어가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성은 936년에 최종적으로 고려가 차지하였다.
이성은 강변을 이용해 해발 90m의 취적산(吹笛山) 정상 부분에 흙과 돌로 쌓아 올렸다.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약 3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성의 동쪽 산기슭에는 642년에 이성이 백제에 함락 당할 때 끝까지 성을 지키다 전사한 신라 장수 죽죽(竹竹)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