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사양리 산75
- 탐방로그
- 유재 전석윤 선생의 추모비 옆에는 소심당 전규환(全奎煥 1832-1893) 선생의 추모비가 함께 모셔져 있다. 구체적인 정보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지만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사양리(泗陽里)에 사셨다는 정보에 따라 매우 가까운 가족이셨을 것으로 보인다. 전규환 선생은 조선 말기 유학자 허전을 스승으로 두었다. 그의 유고 《소심정문집(小心亭文集)이 1936년에 발간되었는데 6권 2책의 목활자본이었으며 전석윤(全錫允)선생이 발문을 붙였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惟齋 全先生 追慕碑(애국지사 유재 전선생 추모비)
愛國志士 惟齋 全先生 追慕碑(애국지사 유재 전선생 추모비)
대범천하에 국가가 있어야 인민이 생장한다. 만고자기의 국가가 없으면 어느 곳에 의탁하리요. 그런 고로 지사와 인인은 국가를 자기 생명 같이 애호한다. 유재 전석윤 선생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강집당한 조국을 찾기 위하여 사명투쟁하였다. 결국 그 공적은 성립하지 못하였으나 충군애국하는 마음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 더불어 동일하다. 자고로 사람이 출사하여 국록을 먹고도 사소한 공적만 있으면 입석하여 송덕하거늘 하물며 백두로 국가를 위하여 헌신노력하였으니 후인을 권고하기 위하여 포창할 일이다. 그리하여 향중의 후생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칠척장비를 깍아서 그 공로를 새겨 세운다. 전씨의 선조가 멀리 백제 온조왕 시대부터 살아왔다. 그동안 명현달사가 다수 배출하였는데 기중에 완산군 충정공이 더욱 덕망과 공로가 있어 전씨의 보조가 되었다. 지사는 어릴 때부터 천품이 강직하고 호학수재하여 공산 송준필 문
하에서 수학하니 문일이지십으로 일익점진하고 효제충신과 돈장강사지도가 숙련하여 원근 사인이 한 낱알이 말하기를 십백지공이 어려움이 없고 ○륜에 독실함은 무안의 공과에 비교하고 학문으로서는 시○○○이나 종내대성하였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에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운동 사상이 날로 더하여 분통하든 차에 기미년 독립만세 의거 당시 초계장터에서 동부 5개 면에 약 3천여 명이 운집한 대규모 민족자결운동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특히 곽종석 김복한 장석영 송준필 선생이 한국유림대표에 앞장서 추진한 전국 유림 파리장서운동은 유림계의 개혁주의와 국제평등대동주의로 파리에서 인류공존의 평화주의를 제창할 때 전국 유림대표 137인이 단결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명한 소원 장서를 파리에 파송하였다. 이때 지사께서는 묘령으로 유림 대표의 힘을 입어 본 면 사양리 신재 김상진과 월곡리 족제 송강 석구와 협력하여 파리장서 서명에 동참한 것은 의리가 있는 대장부의 소성이다. 그러한 애국심으로 광복 이후에 지사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여 그 절의를 찬양하였다. 그렇게 음으로 양으로 구국운동을 하여 오든차 을유년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였으나 이미 노유로 두문자정하여 선왕의 고색을 보존하고 존양지도를 지키면서 만년에 사원정에서 준재를 소모하여 후진양성에 신근유익하고 충효지도 ○경서지학을 축장대문하여 안으로는 격물치지에 전념하고 밖으로는 선행적덕에 근근토록 교유하니 다수사학에게 추앙을 받았다. 배위는 청송 심상준의 녀로 3남 4녀를 두니 남은 영주 영갑 영도이고 녀
창녕 조무현 일선 김규수 익성 배용효 전의 이종헌에게 각각 출가하고 영갑은 본생조 휘 중호에 출봉하였으며 여는 불록한다. 지사께서 서세한지 어언간 40여년이 지난 이제 만시지감이 있어 나 초계 향내 유림과 문하생이 함께 후손의 뜻에 따라 추모비를 건립하니 지사의 위업이 천추에 빛나고 후세에 만인의 귀감이 되어 영원히 숭모하게 될 지어다.
단기 4341년 무자 춘분절에
원임 성균관 전의 강양향교 전교 유도회장 합천 후인 이상학 근찬
단기 4341년 무자 춘분절에
원임 성균관 전의 강양향교 전교 유도회장 합천 후인 이상학 근찬
小心亭 先生 全公 遺蹟碑(소심정 선생 전공 유적비)
小心亭 先生 全公 遺蹟碑(소심정 선생 전공 유적비)
小心亭 先生 全公 遺蹟碑(소심정 선생 전공 유적비)
소심정은 전규환(全奎煥 1832년-1893년)의 호이다. 조선 말기 유학자이었고 자는 찬옥(贊玉)이고, 호는 소심정(小心亭) 또는 태암(泰巖)이며, 초명은 전중진(全中震)이다. 본관은 완산이고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사양리(泗陽里) 출신이니 전석윤 선생의 가까운 어른이신 것 같다. 부친은 아니신 것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기록에 따르면 전규환은 슬하에 2녀를 두고, 아들이 없어 종부(從父)의 동생 전중현(全中炫)의 아들 전석신(全錫臣)으로 후사를 삼았다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소심정은 전규환(全奎煥 1832년-1893년)의 호이다. 조선 말기 유학자이었고 자는 찬옥(贊玉)이고, 호는 소심정(小心亭) 또는 태암(泰巖)이며, 초명은 전중진(全中震)이다. 본관은 완산이고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사양리(泗陽里) 출신이니 전석윤 선생의 가까운 어른이신 것 같다. 부친은 아니신 것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기록에 따르면 전규환은 슬하에 2녀를 두고, 아들이 없어 종부(從父)의 동생 전중현(全中炫)의 아들 전석신(全錫臣)으로 후사를 삼았다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합천군 쌍책면 사양리 430 도로변 애국지사 유재 전석윤 선생 추모비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