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48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485 만송 윤중수선생의 생가 묵와고택을 찾아가고 있다.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485 만송 윤중수 선생의 생가 묵와고택
합천 묘산 묵와 고가(陜川 妙山 黙窩 古家)
중요민속자료 제206호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이 고택은 조선 선조 때 선전관을 지낸 윤사성(尹思晟)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부터 집터는 넓었으며, 한 때 기세가 음성하여 모두 여덟채, 백여 칸 이상의 집이 들어서 있기도 하였다. 현재 솟을대문 안의 경내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사당, 헛간 등 건물이 남아 있어 전통적인 양반가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대문채는 5칸 규모이고 그 안쪽 마당 왼편에 높게 자리잡은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에는 4칸 크기의 내루(內樓)가 돌출해 있고 중랑채가 그 동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랑채의 중문을 통해 안마당에 들어서면 높은 댓돌 위에 자리잡고 있는 안채가 있다. 사랑채는 맛배 지붕 건물이지만 내루 앞 부분은 합각(合閣)을 세운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ㄴ자형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서 대청이 6칸으로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 고가와 관련하여 영사재(思齋)는 윤사성의 6대조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현재 전하고 있다. 일제시대 유생들이 중심이 된 독립청원서 파리장서(巴里辰書)에 서명한 윤중수(尹中洙)도 이 집안의 인물이다.
중요민속자료 제206호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이 고택은 조선 선조 때 선전관을 지낸 윤사성(尹思晟)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부터 집터는 넓었으며, 한 때 기세가 음성하여 모두 여덟채, 백여 칸 이상의 집이 들어서 있기도 하였다. 현재 솟을대문 안의 경내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사당, 헛간 등 건물이 남아 있어 전통적인 양반가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대문채는 5칸 규모이고 그 안쪽 마당 왼편에 높게 자리잡은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에는 4칸 크기의 내루(內樓)가 돌출해 있고 중랑채가 그 동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랑채의 중문을 통해 안마당에 들어서면 높은 댓돌 위에 자리잡고 있는 안채가 있다. 사랑채는 맛배 지붕 건물이지만 내루 앞 부분은 합각(合閣)을 세운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ㄴ자형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서 대청이 6칸으로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 고가와 관련하여 영사재(思齋)는 윤사성의 6대조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현재 전하고 있다. 일제시대 유생들이 중심이 된 독립청원서 파리장서(巴里辰書)에 서명한 윤중수(尹中洙)도 이 집안의 인물이다.
黙窩古家(묵와고가)
黙窩古家(묵와고가)
사랑채 뒷쪽의 본채와 영사재는 문이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