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도리 18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앞서 도리마을 입구에 들어올때 만났던 합천군 대양면 도리 345-7 독립유공 애국지사 배상기(배기상) 묘소 안내판
먼저 대양면 도리 280을 네비게이터에 입력하니 안내하는 곳이 묘소 안내판의 약도와는 다른 방향이다.
대양면 도리 280번지에는 산 속에 있는 가정집이었다. 집주인에게 물으니 이곳은 아니고 마을 입구 쪽이라고 하신다.
묘소 안내판의 약도를 보면서 다시 찾아보기 위해서 마을 입구에서 도리1교로 이동했다.
조금 전에 찾았던 곳은 도리1교를 지나서 마을방향이었고, 약도에는 도리1교 앞에서 좌회전으로 되어 있다.
조금 전에 찾았던 곳은 도리1교를 지나서 마을방향이었고, 약도에는 도리1교 앞에서 좌회전으로 되어 있다.
묘소가 여러 기가 보인다.
먼저 왼쪽 제일 아래쪽부터 찾아보는데 안내판이 보인다.
애국지사 배상기의 묘
공은 1892년 10월 1일 경남 합천군 대양면에서 출생하셨다. 공은 일제치하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20일 합첩읍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셨으며 결사대 족직에 자원하여 독립만세운동, 주동자석방요구 등 독립만세를 외치며 경찰서 내로 돌진하다가 검거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광복의 그날까지 국권회복에 심혈을 쏟으시다 1967년 11월 10일 고향에서 별세하셨다. 공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고 그 위덕을 기리어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햐여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곳에도 위치가 대양면 도리 280으로 되어있다.이곳의 GPS 상의 주소는 대양면 도리 185이다.
공은 1892년 10월 1일 경남 합천군 대양면에서 출생하셨다. 공은 일제치하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20일 합첩읍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셨으며 결사대 족직에 자원하여 독립만세운동, 주동자석방요구 등 독립만세를 외치며 경찰서 내로 돌진하다가 검거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광복의 그날까지 국권회복에 심혈을 쏟으시다 1967년 11월 10일 고향에서 별세하셨다. 공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고 그 위덕을 기리어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햐여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곳에도 위치가 대양면 도리 280으로 되어있다.이곳의 GPS 상의 주소는 대양면 도리 185이다.
愛國志士 裵祥祺 之墓(애국지사 배상기지묘)
애국지사 양선 배공 상기는 성주인 화백의 아들로 1891년 10월 1일에 합천군 대양면 도리에서 태어나다. 천품이 강직고결하며 재능과 기우가 비범하여 일찍 향교에서 수학하면서 충효대의를 배우고 웅지를 기르다 1910년 8월 22일에 한일합방이란 민족비운을 당하자 젊은 피가 역류하고 가슴이 찢어짐을 참을 길 없어 향리의 열혈동지 강홍렬 김영기 이용선 주경천 심진환 심재기 심재인 등과 청년 구국단을 결성하여 야학을 열어 청소년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해외와 서울 등지의 우국지사와 제휴하면서 조국독립운동의 터전을 다져나가다 1919년 3월 고종황제 인산에 참예한 강홍렬이
3.1의거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밀휴하여 돌아오자 단원들은 은밀한 모임 끝에 3월 19일 합천시일에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미리 선언서와 태극기 수백장을 만드는 한편 심재현 손득룡 이용선 김영기 추용만 이상우 등 12명으로 결사대를 편성하다. 3월 19일 미시에 시장에 모인 500여명의 군중과 더불어 선언문을 낭독하고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대 시위 운동을 전개하니 모든 군민이 합세하다. 이에 놀란 일경무장대가 총검으로 위하하고 심재기 등 16명을 구금하고 강제 해산케 하였으나 3월 20일 유시 대양에서 재집결한 결사대원이 보무당당 읍내 광장에 이르러 전일 약정한 각동에서 참집한 군중과 합세하여 구금된 애국지사 석방요구와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읍내를 일주하니 읍중인사들이 호응하는 자 수 백에 이르다. 드디어 경찰서를 포위하니 이에 당황한 서장이 선 해산 후 석방을 제의해 왔으나 우리 측은 선 석방 후 해산을 요구하다.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니 극도로 격분한 대중은 결사대원을 선두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맨주먹으로 노도와 같이 돌진하다. 일경의 일제 발포에 추용만 김영기 김호준 강시만이 순절하고 이용선 손득룡 등 부상 동지와 함께 구금되다. 손톱 발톱을 뽑히는 모진 고문 끝에 심재현 손득룡 이용선 이용수 강상무 동지와 같이 주모자로서 2개여년의 옥고를 치르다. 이후 구국단심은 더욱 타올라 원근 동지들과 뜻을 모아 다시 항쟁을 계속하니 크고 작은 신고는 헤아릴 수 없다.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을 맞아 몸과 마음을 건국사업에 바치고 여생을 향리 후진 교도에 힘쓰다가 1961년 10월 1일에는 70세로 세상을 마치다. 197
7년 10월 1일 나라에서 그 공을 찬양하여 추상(표창 551호)하다.
아! 공 등의 강철같은 애국심의 결정으로 조국이 광복되고 민족이 재생하였도다. 육신은 비록 지하로 돌아갔으나 일편단충은 길이 천상에 있으리니 그 이름 천추에 빛나니로다. 국가유공자 묘소 정화사업으로서 비를 세워 그 공적을 새겨서 후인에게 전하도다.
1982년 6월 일 건립자 합천군수 구자경
아! 공 등의 강철같은 애국심의 결정으로 조국이 광복되고 민족이 재생하였도다. 육신은 비록 지하로 돌아갔으나 일편단충은 길이 천상에 있으리니 그 이름 천추에 빛나니로다. 국가유공자 묘소 정화사업으로서 비를 세워 그 공적을 새겨서 후인에게 전하도다.
1982년 6월 일 건립자 합천군수 구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