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 701-2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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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면에서는 1939년 4월 28일 학교 이전 반대를 계기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이날의 항일운동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5년 이 기념비를 세웠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법수항일운동기념비 추진위원회가 추진하고
법수면민이 세우다
법수면민이 세우다
경남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 701-2 법수항일운동 기념비
法守抗日運動紀念碑(법수항일운동기념비문)
근원이 얕은 강물은 쉬 마르듯이 민족혼이 衰(쇠)한 나라는 외세로 인하여 그 근본을 잃기 쉽다. 우리 민족은 각축하는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수난의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굽히지 않은 강인한 민족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이 이룩되었다.
일제가 2천만 동포의 숨통을 틀어막는 무단통치를 자행하고 있을 때인 1939는 4월 28일 이곳 법수에서는 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계기로 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300여명의 면민은 면장을 둘러메고 의령장으로 가서 장꾼과 더불어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강둑을 따라 이십여리를 행진하여 의령 백야에 이르러서 일본 군경과 마주쳤다.
잔학한 군경의 총검 앞에 무력한 시위 군중은 강제로 해산당하고 시위를 주동한 지사 29명은 현장에서
근원이 얕은 강물은 쉬 마르듯이 민족혼이 衰(쇠)한 나라는 외세로 인하여 그 근본을 잃기 쉽다. 우리 민족은 각축하는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수난의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굽히지 않은 강인한 민족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이 이룩되었다.
일제가 2천만 동포의 숨통을 틀어막는 무단통치를 자행하고 있을 때인 1939는 4월 28일 이곳 법수에서는 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계기로 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300여명의 면민은 면장을 둘러메고 의령장으로 가서 장꾼과 더불어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강둑을 따라 이십여리를 행진하여 의령 백야에 이르러서 일본 군경과 마주쳤다.
잔학한 군경의 총검 앞에 무력한 시위 군중은 강제로 해산당하고 시위를 주동한 지사 29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무고한 면민까지 연행되어 함안경찰서 유치장은 초만원이 되었다.
특히 시위를 주동한 17명의 지사는 11월 21일 부산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상해죄로 6개월부터 1년 6개월의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루었다.
이렇게 굽히지 않은 민족혼의 상징인 법수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이 기념비를 세워 면민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나아가 민족정신을 드높이고자 한다.
백절불굴한 법수면민의 애국충절은 배달의 역사와 더불어 영원하리라.
옥고를 치룬 지사
하고봉 송을윤 박명수 박천수 원임성
이○현 조이규 박종만 황수을 조봉규
송호익 이명덕 조용도 강경생 김성도
서기 1995년 을해 8월 일 이규석 삼가 짓고 조영제 삼가 쓰다
특히 시위를 주동한 17명의 지사는 11월 21일 부산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상해죄로 6개월부터 1년 6개월의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루었다.
이렇게 굽히지 않은 민족혼의 상징인 법수항일운동을 기리기 위해 이 기념비를 세워 면민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나아가 민족정신을 드높이고자 한다.
백절불굴한 법수면민의 애국충절은 배달의 역사와 더불어 영원하리라.
옥고를 치룬 지사
하고봉 송을윤 박명수 박천수 원임성
이○현 조이규 박종만 황수을 조봉규
송호익 이명덕 조용도 강경생 김성도
서기 1995년 을해 8월 일 이규석 삼가 짓고 조영제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