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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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415-1
탐방로그
조경식 선생의 묘가 가족묘지로 이장되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우뚝 솟은 안국산 정기 감돌고 아아 라히 남강물 그침 없는 곳 백절불굴 그 지조 돌에 새기니 길이 길이 겨레의 귀감이 되리.
1984년 갑자 윤 10월 일
인천 이태길 삼가 짓고 방손 영제 삼가 쓰다
설립자 경상남도지사 함안군수
25대
애국지사 서계 함안조공 휘 경식
1887년 12월 14일 생 – 1950년 8월 10일 졸
배 유인 순흥안봉곡지묘 묘좌
1886년 생 – 1960년 12월 14일 졸
자 : 성립, 성해, 성호
손 : 일규, 이규, 문규, 필규, 윤규, 민규, 현규
귀인봉 종중 소사묘역
고려 대장군 원윤공 휘 정은 함안조씨 시조이시고 10대 고려말 공조전서공 휘 열은 우국충정하신 분이며 단종조 12대 정절공 어계 휘 려 선조는 생육신의 한 분이시다. 정절공의 현손인 16대 두암공 휘 방은 임진왜란때 창의토적한 훈공으로 호조참판에 증직되셨다.
숭조목종 효제충의의 유훈을 되새기며 두암공의 5대손 국보공 휘 경진 선조와 후손들의 영령을 모시기 위해 소사에 성스러운 묘역을 마련하였습니다. 선령이시여 생전처럼 굽어 살펴 주시옵고 이곳 안식처에서 영면하소서.
서기 2009년 7월 일 수비 후손 재배
GPS 상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지번은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415-1이다.
愛國志士 西溪 咸安趙公 璟植 之墓(애국지사 서계 함안조공 경식 지묘)
해와 달은 먹구름도 그 빛을 가리지 못하고 지사의인은 총칼로도 그 지조를 꺾을 수 없나니 자연은 일월의 광명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인류사는 지사의인으로 인해 바른 길로 나아감이라 저 포학한 왜제가 우리 국사를 강점했을때 그들의 탄압에 감연히 항거하여 구국의 선봉에 나섰던 조경식 공이 여기 길이 잠드시다.
공의 자는 학중 호는 서계요 함안이 본관으로 고려조 대장군 원윤공 휘 정이 시조이다. 조선조 세조 수선때 생육신의 한 분인 정절공 어계 선생 휘 여가 3대조이요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두암 선생 휘 방이 9대조이다. 아버님은 휘 홍○이서요. 어머님은 전의 이씨 갑제의 따님으로
1997년 이곳 대사리 본제에서 출생하니 유시로부터 과인한 총명과 강선한 의지로 향리의 칭찬을 받았다. 부모와 함께 군북 사촌으로 이거한 후 서점에서 한학을 공부하면서 가사를 돕던 중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매 비분강개 끝에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투쟁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요 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번질 무렵 공은 이희석 박상엽 이원필 조주규 조성규 외 여러 동지들과 비밀리에 서산서원에 모여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거사를 준비하고 3월 19일 함안읍에서 독립선언식과 시위군중을 선도하였는데 동지 수십명이 왜경에 체포되었으나 공은 탈출하여 군북으로 돌아와 다음날 다시 의거를 감행하였다. 이날 군북삼변에 운집한 삼천여 군중 앞에서 공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고 이어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니 그 함성 천지를 진동하였다. 왜경과의 추돌에 흥분한 군중들이 주재소에 투석하자 동원된 왜 헌병들은 실탄을 발사하여 현장에서 순절한 분이 20명에 달했고 공은 피체되어 이 해 12월 1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출옥 후에도 옛동지들과 만세계를 조직하여 비밀리에 항일운동을 계속하였고 몽매에도 그리던 조국광복을 맞았으나 악형의 여독으로 1950년 향년 64세로 영서하였다. 배는 순흥 안씨 상만의 따님으로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으니 남에 성립 성해 성호요 여서 금성 기경주 박유상 남평 문경현 광산 김명규 남양 홍재생이며 성립 남에 일규 이규 필규 민규 남에 용보이다.
1982년 건국공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고 이번에 정부의 애국지사 묘역 정화사업으로 묘도에 편석을 세워 행적의 일단을 새김은 만시지탄은 있으나 위훈에 보답하는 길이라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