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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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3가 149-1
탐방로그
상록탑은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149-1 춘천고등학교(당시 춘천고등보통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탑 명(상록탑)을 쓰시고
설계 조정호,
글 신시철,
조사 김기화,
공사 오지영
제막 서기 1967년 4월 25일
상록탑은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149-1 춘천고등학교 내에 있다.
탑의 하단부에 '상록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상록탑

일제치하인 1936년 춘천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비밀결사 단체인 「상록회」를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면서 잃었던 조국을 다시 찾으려고 분연히 일어섰다. 상록회 사건은 1938년 12월 일제에 의해 소년 학생 137명이 체포되어 10명이 2년 6월의 실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고, 그중 백홍기(10회)는 20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 후 1941년 2월 또다시 24명의 학생이 검거·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이광훈(15회) 군이 인천형무소에서 고웅주(15회) 군이 김천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애국충정으로 산화한 상록회원들의 얼을 기리고 이를 계승·발전시켜, 춘고인들의 상록 정신을 드높이고자 춘고동문회의 정성을 모아 1967년 4월 25일 제43회 개교기념일을 기해 이 탑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3월 1일 동문회 주관으로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탑 명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으며, 탑의 전면에는 상록탑 건립 취지문을, 좌측에는 광복을 가리키는 상록회원들의 모습을 조각하였고, 탑의 3개의 지주는 둥근 구를 받쳐 든 모양으로 그분들의 애국정신과 의지를 표현하고 그들의 넋의 결실이 온 누리에 광명을 뿌리는 태양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안내판이 잘못되어 있다. 1938년 12월에 체포되어 옥사한 인물은 '백홍기'가 아니라 '백흥기(白興基)'이다.
조국의 운명이 어둠 속에 묻혔던 한때 우리 민족이 치욕의 역사를 벗어나려 일제에 항거하는 운동을 벌이든 중에 1936년 추고학생들을 중심으로 상록회라는 숨은 모임을 조직하고서 밖으로는 독서회 형식을 빌어가지고 안으로는 열렬한 민족사상을 기르며 농촌에 들어가 농민을 계몽하는 한편 함흥, 평양 등지의 학생들과 연락하여 피 끓는 젊은 동지들의 호응을 구하고 만주에까지 연결의 손을 뻗었다. 일제의 잔인하고도 무도한 학정 아래 시들어가는 민족의 얼을 다시 살리고 조국을 광복하려던 스무살 젊은이들 눈보라 속에서도 푸르른 상록수같이 그들에겐 변절도 굴복도 없었다. 그러다가 1938년 일경에 드러나 24명이 체포되고 36명이 송청 10명이 2년 6개월씩 6개월의 체형을 받아 서대문감옥에서 백홍기는 옥사하고 남은 이 1941년에 출옥했다. 더욱이 그 정신은 모교의 전통이 되어 구국의 정열에 불타는 학생들이 많아 온갖 악형을 겪고 옥고를 당하던 중에 이광훈과 고웅주는 옥사했었다. 역사는 비록 흘러갔어도 교훈은 남고 그날의 운동은 이 고장의 자랑이기에 여기 이 마당에 상록탑을 높이 세우고 의거의 전통을 길이 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