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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861
- 탐방로그
- 경남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애국지사 안지호 의사의 생가 터가 있다고 하여 찾았다. 당초 생가를 복원하려고 하였지만, 경주마휴양조련시설에 포함되어서 인근 도로변에 유허비를 세우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짚고 절을 세워 그 방명을 청사에 드리웠음이랴 이곳 가야읍 절음리는 우봉의사의 창의하셨던 우소이다. 이제 함안군민이 유허의 비를 세워 의적을 영전코자 의결하고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어느날 안수향 위원이 공의 증손 희주 보와 함께 나를 대전에 찾아와 비문을 청하니 내의 불문으로 감당키어려우나 일찍이 "우봉실기"를 폐사에서 간할할째 이미 위적을 경모한바 있는지라 삼가 사실을 살펴 만의 일을 우와 같이 기술하고 명하노니
충효의 가문이요 문성공의 현예로서 기품이 괴위하사 적앞에 항쟁하시였네
독립을 주창하신 강개의 열사이고 옥중의 고초에도 높은 뜻 안 굳혔네
치욕에 분울하사 자위가를 지었더니 결국 순국하였음에 죽어 영생하시었네
오상우국 그 옛 터에 큰 비 세워 기사하니 위대하신 대절이여 유방백세하오리다.
충효의 가문이요 문성공의 현예로서 기품이 괴위하사 적앞에 항쟁하시였네
독립을 주창하신 강개의 열사이고 옥중의 고초에도 높은 뜻 안 굳혔네
치욕에 분울하사 자위가를 지었더니 결국 순국하였음에 죽어 영생하시었네
오상우국 그 옛 터에 큰 비 세워 기사하니 위대하신 대절이여 유방백세하오리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애국지사 안지호 의사의 생가 터가 있다고 하여 찾았다.
당초 생가를 복원하려고 하였지만, 경주마휴양조련시설에 포함되어서 인근 도로변에 유허비를 세우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당초 생가를 복원하려고 하였지만, 경주마휴양조련시설에 포함되어서 인근 도로변에 유허비를 세우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우봉 안지호 의사
안지호 선생은 1857년 9월 21일 고성군 고성읍 풍화리에서 태어나 함안군 대사면 산서리(현 가야읍 산서리)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어려서 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했다.
3.1독립운동 전국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한평생 항일의지를 확산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살신성인 했다. 오늘 선생의 만년의 생가인 신음리 양지바른 곳에 터를 닦아 군민의 이름으로 우봉 안지호의사 유허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이 비를 세움으로서 항일운동과 애국충적의 정신을 기리고 모든 군민에게 알려 나라사랑의 표상을 삼고자 한다.
안지호 선생은 1857년 9월 21일 고성군 고성읍 풍화리에서 태어나 함안군 대사면 산서리(현 가야읍 산서리)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어려서 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했다.
3.1독립운동 전국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한평생 항일의지를 확산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살신성인 했다. 오늘 선생의 만년의 생가인 신음리 양지바른 곳에 터를 닦아 군민의 이름으로 우봉 안지호의사 유허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이 비를 세움으로서 항일운동과 애국충적의 정신을 기리고 모든 군민에게 알려 나라사랑의 표상을 삼고자 한다.
自慰歌(자위가, 옥중에서 지음)
하늘이 덮고 땅이 시름이여 이에 사람이 있도다. 아버지께서 낳으시고 어머니께서 기름이시여 이에 이상을 온전히 하리로다.
인군과 아버지가 일체임이여 만고에 큰 별(강령)이라. 나홀로 이때 아닌데 남이여 몸을 용열하고 재조도 어질지 못하다. 하늘이 나라를 사랑하여 돌아보지 않음이여 슬프다 우리동방이로다. 조국강토를 회복하지 못함이여 차마 새, 짐승,개, 염소를 볼까. 난신역자가 다 후(侯)작과 백(伯)작이 됨이여 슬프다 저 적과 같이날고뛴다.
인군의 원수를 갚지못하니 신민의 큰수치로다. 맹서컨데 같이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으리라 . 죽으면 영화되고 살면 욕이 됨이여 칠십 쇠한 늙은이가 무엇을 경영할고 다만 원컨대 일찍 지하에 돌아가 우리인군에게 배알하고 자상히 아뢰리라. 이로써 나의 마음을 결정하고 정을 위로하여 큰노래를 부르니 천지가 망망하도다.
우봉 안지호
하늘이 덮고 땅이 시름이여 이에 사람이 있도다. 아버지께서 낳으시고 어머니께서 기름이시여 이에 이상을 온전히 하리로다.
인군과 아버지가 일체임이여 만고에 큰 별(강령)이라. 나홀로 이때 아닌데 남이여 몸을 용열하고 재조도 어질지 못하다. 하늘이 나라를 사랑하여 돌아보지 않음이여 슬프다 우리동방이로다. 조국강토를 회복하지 못함이여 차마 새, 짐승,개, 염소를 볼까. 난신역자가 다 후(侯)작과 백(伯)작이 됨이여 슬프다 저 적과 같이날고뛴다.
인군의 원수를 갚지못하니 신민의 큰수치로다. 맹서컨데 같이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으리라 . 죽으면 영화되고 살면 욕이 됨이여 칠십 쇠한 늙은이가 무엇을 경영할고 다만 원컨대 일찍 지하에 돌아가 우리인군에게 배알하고 자상히 아뢰리라. 이로써 나의 마음을 결정하고 정을 위로하여 큰노래를 부르니 천지가 망망하도다.
우봉 안지호
우봉 안지호 의사 유허비
우봉 안지호의사 유허비문
아! 이곳은 순국의사 안공의 유허이다. 의사께서는 국말에 태어나 국치에 사시면서 일념우국하시다가 옥중에서 돌아가셨으니 청사에 빛나는 장렬이 아니신가. 공의 휘는 지호 자는 운익 호는 우봉이고 성은 안씨 관 순흥인데 시조는 고려 신호위상장군 휘 자미요 삼전하여 휘 향은 동방도학의 사종인 문성공 매헌선생으로 대대현혁한 망족이다. 또 육전하여 휘 경은 한성윤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인데 곧 공의 파조이다. 휘 종소 도원 재열을 고 증 조이고 고는 교준이니 모두 학덕이 높았고 비는 김해김씨 화성의 녀로 숙덕이 있었다. 철종 정사(1857) 9월20일에 공을 고성 풍화리에서 생하니 천부의 품성이 초범하고 기우강직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효우 또한 극진하였고 독서를 호상하여 경사를 정통하고 후진을 교육하여 풍화진작에 진력하셨으니 세사 날로 잘못됨을 보시고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외우며 충신절의지사가 수명하는 구절에 이르러 격정탄상하셨더니 경술국치의 변을 만나 앙천대규 그 분울을 견디기 어려워 각부왜추에 항의서를 보내 주권의 대의를 일깨우고 또 만국공관에 원톰함을 호소하여 독립을 주장하시다가 여러번 피체되어 심한 고문에도 지사불민하시었다. 무오년에 광무황제가 승하하시고 익년 을미
아! 이곳은 순국의사 안공의 유허이다. 의사께서는 국말에 태어나 국치에 사시면서 일념우국하시다가 옥중에서 돌아가셨으니 청사에 빛나는 장렬이 아니신가. 공의 휘는 지호 자는 운익 호는 우봉이고 성은 안씨 관 순흥인데 시조는 고려 신호위상장군 휘 자미요 삼전하여 휘 향은 동방도학의 사종인 문성공 매헌선생으로 대대현혁한 망족이다. 또 육전하여 휘 경은 한성윤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인데 곧 공의 파조이다. 휘 종소 도원 재열을 고 증 조이고 고는 교준이니 모두 학덕이 높았고 비는 김해김씨 화성의 녀로 숙덕이 있었다. 철종 정사(1857) 9월20일에 공을 고성 풍화리에서 생하니 천부의 품성이 초범하고 기우강직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효우 또한 극진하였고 독서를 호상하여 경사를 정통하고 후진을 교육하여 풍화진작에 진력하셨으니 세사 날로 잘못됨을 보시고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외우며 충신절의지사가 수명하는 구절에 이르러 격정탄상하셨더니 경술국치의 변을 만나 앙천대규 그 분울을 견디기 어려워 각부왜추에 항의서를 보내 주권의 대의를 일깨우고 또 만국공관에 원톰함을 호소하여 독립을 주장하시다가 여러번 피체되어 심한 고문에도 지사불민하시었다. 무오년에 광무황제가 승하하시고 익년 을미
(1919)년 봄에 홍능국장후 팔도국민이 분기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키니 이때 의사께서 함안의 맹주로 의기를 선봉에 들고 장날을 택하여 봉기하니 3월 19일이었다. 독립을 절규하는 싱위군중이 수천에 이르고 적수공권으로 총검앞에 항거하며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분기충천하니 왜졸의 만행은 유혈로 유산하고 공은 체포되었다. 그 혹독한 고문에도 사기는 엄려했고 운동을 추도한 책임은 나다 라고 호통하셨고 마산옥에 수감되어서는 심문하는 왜관앞에 탁자를 던지며 ○적불굴 하셨다. 1심에서 3년형을 대구복심법원에서는 7년반의 징역을 언도받고 신유(1921)년 8월에 마산감옥으로 옮겨졌다.
아! 의사의 옥중위가는 옛 송나라 충신 문천상의 정기가와 비교되니 이 노래는 나라망한 백성으로 하여금 뒷날에 신자된 사람들을 감발고무한 글이 아니던가. 익년(1922) 12월 23일에 장독의 고초를 견디지 못 하시고 구국광복의 꿈을 이루지 못한채 마산옥중에서 65세를 일기로 순국하셧으니 비통할 일이다. 의사의 지극일념은 오직 나라 있음만 알고 자신이 있음은 알지 못하셨던가 오로지 구권회복만을 도모하여 초지를 불개하고 사생취의하셨으니 사이불사의 영생이 아니신가. 부음을 들은 소노남녀 붕루를 흘렷고 마산시민이 치장코저 하였으나 적의 제지를 당하였고 대산면 옥열리 석림산 임좌원에 반친하니 만사와 뇌문으로 내곡한 사람이 많았고 교남사민은 거금하여 영장입비하고 "안의사지묘"라 새겼고 유림향약소의 포장문에는 높은 절개 이미 산하를 진동했고 인구에 외자되어 내세에 전한다 하였다. 배는 일양박씨 도관의 녀인ㄷ 공전5년에 졸하고 묘는 합폄이다. 일남이 있으니 승문이요 손은 양근이고 증손은 희주와 희상과 희원이다. 의사의 항서등 유문이 많았는데 왜정의 탄압으로 사실되었고 공의 제의호씨가 억울함을 머금고 약간의 시문과 자위가및 만사 제문등을 합쳐 두 권에 엮어 "우봉실기"라 하였더니 근세에 증손 희주가 증보중간하였으며 1963년에 정부로 부터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고 전국민족대표 48인중 한 분으로 서대문독립운동기념관 순국열사 봉안소에 타령하고 함안충의공원에 봉안하여 그 충혼을 추앙한다.
아! 성하도다. 자고로 함안은 충의의 고장이요 유수의 향인데 안공께서 또한 불우한 시대에 정출하여 의를
아! 의사의 옥중위가는 옛 송나라 충신 문천상의 정기가와 비교되니 이 노래는 나라망한 백성으로 하여금 뒷날에 신자된 사람들을 감발고무한 글이 아니던가. 익년(1922) 12월 23일에 장독의 고초를 견디지 못 하시고 구국광복의 꿈을 이루지 못한채 마산옥중에서 65세를 일기로 순국하셧으니 비통할 일이다. 의사의 지극일념은 오직 나라 있음만 알고 자신이 있음은 알지 못하셨던가 오로지 구권회복만을 도모하여 초지를 불개하고 사생취의하셨으니 사이불사의 영생이 아니신가. 부음을 들은 소노남녀 붕루를 흘렷고 마산시민이 치장코저 하였으나 적의 제지를 당하였고 대산면 옥열리 석림산 임좌원에 반친하니 만사와 뇌문으로 내곡한 사람이 많았고 교남사민은 거금하여 영장입비하고 "안의사지묘"라 새겼고 유림향약소의 포장문에는 높은 절개 이미 산하를 진동했고 인구에 외자되어 내세에 전한다 하였다. 배는 일양박씨 도관의 녀인ㄷ 공전5년에 졸하고 묘는 합폄이다. 일남이 있으니 승문이요 손은 양근이고 증손은 희주와 희상과 희원이다. 의사의 항서등 유문이 많았는데 왜정의 탄압으로 사실되었고 공의 제의호씨가 억울함을 머금고 약간의 시문과 자위가및 만사 제문등을 합쳐 두 권에 엮어 "우봉실기"라 하였더니 근세에 증손 희주가 증보중간하였으며 1963년에 정부로 부터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고 전국민족대표 48인중 한 분으로 서대문독립운동기념관 순국열사 봉안소에 타령하고 함안충의공원에 봉안하여 그 충혼을 추앙한다.
아! 성하도다. 자고로 함안은 충의의 고장이요 유수의 향인데 안공께서 또한 불우한 시대에 정출하여 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