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유공자 추모비(하동군 청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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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885-1
탐방로그
경남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885-1에 항일 독립유공자 추모비가 위치한다. 2011년 기준 청암정우회가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김기범의 장남 김창운과 4남인 김창덕 교장 등이 찬조금을 내고, 하동군에서 1,000만 원을 지원하였다. 청암면 독립 유공자 추모비는 본래 청암면 중이리 청암호숫가 못 둑이 가까운 곳에 세워졌으나, 이후 청암호숫가 북서편 즉 묵계리 방향으로 이동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비(碑)에 대한 설명(說明)
○ 비(碑)가 넘어질 듯 불안정함은?
일제시대 당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표현
○ 항일독립(抗日獨立)글귀를 바르게 쓴 의미는?
국민의 바른 마음과 굳건한 애국정신으로 독립된 나라를 찾겠다는 마음
○ 맨 위의 태양은?
빛과 영광을 뜻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상징
님들의 큰 뜻을 기리며
日帝(일제)의 침략으로 祖國(조국)이 暗鬱(암울)할 때 뼈를 깎는 아픔을 함께하신 님들이여! 스스로 조국의 義兵(의병) 되어 총검으로 敵(적)과 맞서 일어섰고 己未年(기미년)의 三·一獨立(3·1독립) 運動(운동) 民衆(민중)의 앞장에서 만세 외침 드높았네. 모진 拷門(고문)에 肉身(육신)이 다 부서져도 님들의 壮(장)한 愛國魂(애국혼)은 鄕土(향토)의 青石(청석)보다 더 단단했네. 님들은 가셨어도 님들이 남기신 忠節(충절)의 큰 뜻은 祖國(조국)과 더불어 여기 青岩(청암) 터에 별처럼 永遠(영원)하리라. 조국이여! 님들을 잊지 마소서.
抗日獨立有功者追慕碑(항일독립유공자추모비) 및 忠魂塔(충혼탑)은 군비 일천만원 유족 대표 金昌云(김창운)씨 외 유족 여러분과 青岩情友會(청암정우회)의 誠金(성금) 및 面民(면민)과 그밖의 여러분이 協助(협조)해 주신 情誠(정성)을 한데 모아 建立(건립)합니다.
단기 4328년, 서기 1995년 8월 15일 青岩情友會(청암정우회)
青岩情友會(청암정우회) 회원명단 (92년 5월 현재)
항일독립유공자추모탑과 충혼탑이 나란히 서 있다.
抗日獨立有功者追慕碑(항일독립유공자추모비)
抗日獨立有功者追慕碑(항일독립유공자추모비)
아아 보는 듯 森嚴(삼엄)하고 듣는 듯 쟁쟁하네. 나라 위해 민족 위해 외치던 만세소리 '대한독립만세' 이천만의 울부짐 己未年(기미년) 三月 一日(3월 1일). 전국방방곡곡 남녀노소 蜂起(봉기)하여 무도한 倭(왜)놈께 짓밟힌 약소민족의 설음. 세계만방에 呼訴호소할 때 이 땅 青岩(청암)에도 만세소리 진동하고 태극기 물결 일어 壮(장)하신 님들께서 다투어 앞장서서 棍杖(곤장)과 獄(옥)살이 甘受(감수)하셨네. 님께서 흘리신 피와 육신을 태운 獨立精神(독립정신)을 하늘이 感動(감동)하사 酷毒(혹독)한 倭政(왜정) 三十六年(36년) 正義(정의)앞에 무릎꿇어 光復(광복)의 기쁨 누리게 됐네. 님들의 구국정신 사후에 남겨 芳名永遠(방명영원)이 빛나도록 우리 面民精誠(면민정성)모아 山(산)좋고 물좋은 청암댐 언덕 위에 추모비 세워 영령을 달래오니 千秋萬歲(천추만세) 전하리라.
단기 4328년, 서기 1995년 8월 15일 글지은이 : 양삼준, 글쓴이 : 하태현
活動要約(활동요약)
鄭南時(정남시) 1885.9.19 생 1932.6.11 졸
궁항리 출신. 1919년 3월 29일 안계리장터에서 300여명을 규합하여 시위지도, 진주와 대구복심법원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 확정,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추서
金淇範(김기범) 1885.9.25 생 1951.7.6 졸
평촌리 출신. 태극기를 제작. 1919년 4월 8일 평촌마을 앞에서 시위 군중을 지도.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 언도. 건국훈장 애족장 1994년 추서
鄭在玉 1893.2
鄭在玉(정재옥) 1893.2.21 생 1944.9.20 졸
평촌리 출신. 김기범 등과 대형 태극기 제작. 1919년 4월 8일 평촌마을 앞에서 시위지도. 부산지법 진주지청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 확정. 대통령표창 1992년 추서
경남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8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