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낙영 유적비

4

주소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82
탐방로그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82에 위치한 애국지사 정낙영 유적비를 탐방했다. 찾아가보니, 해당 비석은 도로변에 기념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愚山 先生 晉陽鄭公 諱 洛榮 遺蹟碑(애국지사 우산 선생 진양정공 휘 낙영 유적비)
공의 성은 정씨요 진양 은율공후 휘 낙영 자 광견 호 우산 입하조 오봉공 휘 대수 후 11세손야라. 처사 원국공과 유인 장수이씨의 차남으로 서기 1879년 3월 22일 금남면 대현사제생자하여 서기 1947년 1월 26일 고종 명하니 68년간의 생애를 통해 남긴 유적은 민족자존을 지켜 일주긍식을 이루웠다. 육영이 국권회복의 첩경임을 인지하고 동지와 더불어 현산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역임 국지동량지재를 양성하여 왜정의 질곡과 강려로움에 맞서 투쟁하면서 고종 인산을 기한 기미독립선언서보다 앞서 동지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민족정기를 되살렸다. 황천이 주시고 신명이 도우사 세계평화의 회의가 창개됨을 반하야 민족자결의 여론이 병기하난 차 호시운이 래하얏도다. 오호라 10개 성상을 타의 기반하에서 인통신음하던 우리 대한동포여 확호한 정을 려하여 신속히 수를 착하라, 시가 래하고 운이 부하얏네, 주저치 말며 관망치 말고 우리의 사업을 우리 심력으로 자결단행합시다. 아의 심기설봉은 타의 장창거포보다 우승하니 일심단체로 광복지로 병향합시다. 최후의 일인과 최후의 일
각까지 폭동과 난거는 행치말고 인도와 정의로 독립문으로 전진합시다. 어희라 대한광복과 동양신목과 세계평화가 금일로부터 실현되얏소. 분기하고 맹진하라. 우리 반만년 신성한 역사와 삼천리 금수의 강토를 유한 우리 동포여. 단군개국 4252년 2월 17일 정낙영, 정희근 외 18인
공은 향유와 정희근, 정재운, 정몽석 문족들과 합세 향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선도하고 멀리 남해읍내까지 진출 선창하니 그 호연지기는 한민족의 표상이라 하겠다. 왜경에 피검 6월 옥고를 겪으면서도 의연한 풍모는 지사로서 긍지를 지녔도다. 광복 조국에서 우국지사로 대통령표창을 추훈하니 향토지에 등재 방명이 천추후일에 전해져 당시를 방징하여 현○함은 그 영을 추인하고 칭술로서 그 실상을 현창하는 것이로다. 서기 1931년 남방 사림과 논○ 금오산 울중 방계곡에 충의정공 계비조인 경충사를 건립 당회 시는 강학불권하고 평생지기를 불변하니 絵欲이지야를 통척하고 현자 도의지교로 ○○하며 자익택지의로 옛 사람의 우도가 있어 문하 출입자 화목질서가 있었으며 순후풍모에 타인지건을 구론하지 않음이 천성이었고 등산 임수부시도 울연지기를 항시 심중에 쌓았으며 선학으로 성품을 밝히고 성실로 인의를 돈정하고 학이 넓고 도가 큰 곳에 이르렀다. 효비지상을 당하여 거우함이 예제를 따랐으며 효도인즉 근본으로 인에 힘썼으니 진퇴와 교우함을 의합으로 하였으니 뜻이 맑고 행의가 의정하여 높은 바람 조촐한 절의가 후세에 전하여도 멸하지 않으리. 실로 계후유방이 금오청풍과 벽계옥류에 자란 설송처럼 한려해상에 정립하여 아래로는 두터운 그늘을 드리우고 위로는 하늘을 떠받쳐 한 그루 설송이 수를 놓아 충절을 더했도다. 그 모진 풍진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내 조국 내 민족을 지켰으니 봉황인들 깃들지 않으리오. 당중직립에 우중청영을 이은 부강일념으로 일제 압제에 항거하여 문족과 향유를 이끌고 남방서학일 때 어느 누가 따르지 않았으리. 홍유거○이 많다한들 그 어느 누가 출이부지하였던가. 위대하도다. 그 다한 진충보국 불후무궁 하리로다.
세시 서기 1998년 2월 일
원임 성균관전학 정한효 근찬
경주후인 청천 정운재 근서
자 재범 재근 재음 재화
손 판석 규석 련 동호 장호 철호 용 경호 광석 명호 양호
증손 한주 한익 한태 한두 한택 한승 한상 한수 한조 한기 한현 한덕 한욱 필승 주항 주영
현손 회동 상욱 상운 성주
후손 일동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82 애국지사 정낙영 유적비를 찾고 있다.
축 진양정씨 은열공파 22세 휘 규영공 ("파리장서" 서명) 건국포장 추서
- 진양정씨 은열공파 목사공 문중 -
大見齋(대견재)
愛國志士 愚山 先生 晉陽鄭公 諱 洛榮 遺蹟碑(애국지사 우산 선생 진양정공 휘 낙영 유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