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123-1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창원읍민만인운동비
1919. 3. 23. 애국지사들이 창원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주민 6~7천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러 일본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1985. 10. 건립하였다.
1919. 3. 23. 애국지사들이 창원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주민 6~7천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러 일본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1985. 10. 건립하였다.
창원읍민만인운동비
3.1 독립기념비
민족의 횃불은 마침내 활활 타올랐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터져나온 우렁찬 만세의 함성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이곳 천주산 기슭, 유서 깊은 창원읍에도 진동했다. 자유는 강산의 어둠 속에서 눈을 떳고 독립은 겨레의 가슴 속에 샛별처럼 빛났다. 때는 기미년 3월 23일과 4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장날에 모인 수천명의 애국동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혀 외쳤다.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가혹한 옥고를 치르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싸웠다. 이제 조국은 님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광복의 날을 맞은지 어언 40여성상 영광된 선진조국창조를 위한 힘찬 고동이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는 님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겨례사랑의 높푸른 정신을 받을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온 시민의 뜻을 모아 여기 이 비를 세운다.
1985년 10월 일 창원시장 세움
민족의 횃불은 마침내 활활 타올랐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터져나온 우렁찬 만세의 함성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 이곳 천주산 기슭, 유서 깊은 창원읍에도 진동했다. 자유는 강산의 어둠 속에서 눈을 떳고 독립은 겨레의 가슴 속에 샛별처럼 빛났다. 때는 기미년 3월 23일과 4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장날에 모인 수천명의 애국동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혀 외쳤다.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가혹한 옥고를 치르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싸웠다. 이제 조국은 님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광복의 날을 맞은지 어언 40여성상 영광된 선진조국창조를 위한 힘찬 고동이 메아리치고 있다. 우리는 님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겨례사랑의 높푸른 정신을 받을어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온 시민의 뜻을 모아 여기 이 비를 세운다.
1985년 10월 일 창원시장 세움
경남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123-13 두럭어린이공원 내 창원읍민만인운동비(창원만세운동비)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