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병항쟁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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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715-38
탐방로그
강릉의병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강릉의병항쟁기념탑'은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715-38에 위치하고 있다. 공원 내에는 기념탑을 비롯하여 강릉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한 민용호, 민긍호, 권인규, 권종해, 권기수, 권익현 등 의병장 6명의 흉상이 건립되어 있으며 권인규-권종해-권기수 의사의 관계는 각각 조부-부-아드님(3대)의 관계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병 권인규 의사
권인규-권종해-권기수 의사는 각각 3대의 조부-부-아드님이 되신다.
의병 민용호 의사
의병 민긍호 의사
강릉의병항쟁 약사

일제(日帝)는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청일 전쟁에서 승리, 청의 세력을 축출하고, 1895(을미)년 명성왕후를 시해, 그 세력을 꺾은 후, 단발령을 시행하는 등 침략행위가 노골화되지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강릉유림의 지도자 권인규는 민용호 의병을 맞아들여 각종 포고문 등을 지어 의병투쟁의 당위성을 설파 민중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최대조직인 유림의 지지로 5개월여 동안 강릉에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영동 12진에 봉수장과 망해장을 두어 활동하였다.
일제의 침략 교두보인 개항장 원산을 치고 그 여세로 서북면 의병과 연합, 서울을 공략 계획 하에 연합의진을 구성 2,380여명으로 북진을 감행, 원산 80여리 못 미친 언?변? 신평에서 무기의 열세와 악천후로 패전하였다.
민용호는 이후 강릉을 거점으로 동해안과 북행 중 많은 격전을 치르면서 압록강을 건너 간도로 들어갔다.
을미의병은 일군과 그 세력권에 있는 관군과 맞서 싸우는 민중군 성격을 띠고 있으며 위정척사 외제를 물리치료 자주독립수호를 목표로 유생들이 앞장섰다.
1905년 무력으로 위협 을사늑약을 체결 외교권과 내정을 장악한 일제는 1907(정미)년 고종의 양위와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을 강행하니 "이제 결사 항전할 때"라고 하며 권인규의 아들이며 강릉유림의 지도자인 권종해는 원주병영의 특무정교 민긍호 등을 찾아 모의하고 무기를 지원받아 의병 소모장이 되어 의병 모집, 강릉읍 백담사 정선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1909년 양양에서 항쟁하다가 경술국치 후 중국으로 망명 의군부에서 유격장으로 활동하였다.
3.1운동 시에는 강원 충북 일대를 잠행 무력투쟁을 획책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민긍호는 원주에서 기병 유격전으로 제일 강력한 의병으로 1907년 11월 27일과 28일 2일간의 강릉읍 공략전 등 수많은 전투에서 일군에게 큰 손상을 주었다.

강릉의 청년회원 200명은 민긍호의 충주읍 공격에 참전 의기를 드높이기도 하였다.
정미의병은 한말 최후의 항쟁으로 소수정예의 유격전으로 1915년까지 굴하지 않고 지속, 일제 무단정치의 암흑기를 밝게 비추어주었다.

권기수는 조부와 부친으로 일제의 잦은 박해에도 부친의 의병진에 연락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1908년 6월 6일, 일군은 강릉 초당의 권종해의 집을 급습, 그의 어머니 경주 김씨는 타살하고, 집은 소각하고 둘째아들 증수는 총검으로 무참히 찔러 중상을 입자 가정은 풍비박산되어 전전하는 처지가 되었다.

3.1운동 시에는 영월, 평창, 정선에서 만세 세위를 주동한 후 체포되어 4년 징역에 3년 복역 후 병 보석으로 석박되었으나 여독으로 29세의 꽃다운 생을 마감하였다.
이와 같이 의병항쟁은 일제의 한국병탄 정책을 지연시켰으며, 이후 독립군의 역할과 국내외 항일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동기로 광복의 영광을 안고 풍요로운 삶을 오늘에 누리고 있으나 다시금 조국 통일의 염원을 성취하는데 선조들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아야하겠다.

특히 강릉인의 타오르는 불길 같은 애국 애족 정신이 많은 희생과 인내를 감내하면서 항일 항쟁에 앞장섰으며 권인규 의사 3대의 치열한 투쟁은 희귀한 사례로 유명하다.
2004년 정부에서는 권인규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지정. 그 공훈을 기리고 3대의 행적을 재조명하였다.
의거의 총성이 울린지 100여년이 지나서야 이 지역사회에서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선인들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간략하게 내력을 이 조형물에 새겨 이곳에 세운다.

2010년 5월 강릉시장 강릉항일운동 "얼" 선양회


강릉의병항쟁 참여자
을미(乙未) 1895-1896 의병

민용호 강동오 강우서 권대형 권명수
권익현 권인규 권인하 권형원 공긍열
김노원 김도근 김도현 김안수 김양선
김연상 김원섭 김윤희 김인수 김창호
김헌경 김형윤 김화목 민동식 민의식
박동의 박봉구 박한옥 변석구 서희원
성익현 송형순 신무섭 신상묵 심홍택
심홍탁 안성호 이건필 이경보 이경응
이경환 이명열 이병선 이병채 이봉구
이승찬 이승학 이영찬 이우열 이운하
이원하 이정채 이종국 이해수 이호성
임익상 장두상 장한두 전석영 전치운
정규섭 정기풍 정동수 정헌중 주면상
주명승 차윤옥 최돈익 최문환 최범식
최용각 최인섭 최중봉 최한경 최한식
최희구 최희복 한중보 황면호 황학수


정미(丁未) 1907-1915 의병
민긍호 권응정 권종해 권치봉 권기수
금기철 길희정 김광옥 김기옥 김덕제
김용원 김운오 김원실 김정희 김종근
김종철 김진현 김해석 이득수 원도인
유복록 윤기영 이상학 장명수 정경익
정광칠 정대성 정욱영 주광식 주석면
채경묵 최돈호 최인순

외지항쟁(강릉출신)
김병연 김성구 신인로 우상욱 윤동섭
이인회 황정일
의병 민용호 의사 어록

국수를 과연 이미 갚았은즉 종사의 복이요 생민의 원이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고 구차히 운운한다면, 시역의 화와 병란의 참상이 이로부터 더욱 커져 수습할 사람이 없게 되리니 합하가 어찌 능히 마음을 편히하고 화를 끌어내겠는가? 단발의 화는 또한 다음의 일이 될 것이다. 아! 배부의 도적들이 혹 죽고 혹 도망한 것을 어찌 원수를 갚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협박에 못 이겨 따르는 정치에 불과하며, 왜추가 아직도 우리 땅에서 천지간에 마음대로 군림하고 있으니 이를 장차 어찌 할 것인가?

(이도재 남로 선유사의 의병해체 선유에 답한 글 중에서)
강릉항일기념공원 조형물 준공기

우리 선조들은 일제 침략에 조국을 위하여 부연히 일어나 싸웠고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된 조국이 있게 되었다. 강릉인들의 의병정신을 기리고 특히 을미, 정미 의병 시 치열했던 항쟁사 속의 구국정신과 그 분들의 혼을 여기에 새기고 후세에 선열들의 얼을 계승하고자 강릉항일기념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2010.5
발주처. 강릉시장
설계. 시공. 아름다운세상 조형연구소 조각가 이경순 감독 강릉시청 최상섭
제안. 강릉항일운동 '얼'선양회
회장 손종환
부회장 최근중 외 회원 22명
의병 권익현 의사
권익현 약사
강릉부중 의진 장으로 경무서를 쳐 친일 핵심 고준석을 잡아 민용호에게 인계. 무혈입성 기여, 오영도 총독, 별영장, 전영장, 소모장으로 의병투쟁. 2012년 3월 1일 건국포장 추서.
의병 권기수 의사
권인규-권종해-권기수 의사는 각각 3대의 조부-부-아드님이 되신다.
의병 권종해 의사
권인규-권종해-권기수 의사는 각각 3대가 의병운동에 앞장 섰다. 각각 조부-부-아드님이 되신다.